"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종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중요한 단어를 꼽으라고 한다면 난 주저없이 '사랑'이라고 말할것이다. 이유는 가장 보편적인 진리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도 죄많은 우리들을 너무나도 사랑하신 나머지 자신을 희생하셔서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의 길을 열어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당부하셨다. "서로 사랑하여라."
사랑의 의미는 종교적으로 부여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남녀간의 사랑, 부모 자식간의 사랑, 동료간의 사랑, 이웃간의 사랑 등 여러종류가 있지만 문제는 얼마만큼 실천하고 있는가?이다. 친구와 우정을 배신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우정을 잘할 수 있을가? 사랑하는 부모를 배신한 사람이 장인장모를 사랑할 수 있을가?
지금 친구와의 우정을 돈독히 이어나가는 사람이 새로운 친구를 만나도 우정을 잘키워나갈 수가 있다. 우리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이 장인 장모도 사랑할 수 있다. 이유는 사랑은 진정한 마음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는 어렵지만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았기에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노력을 소홀히 하지말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가장 기초적 가치관이 무너지면 그 공동체는 쉽게 무너진다. 인류는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지만 그러한 성향을 보충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다른 형태는 존중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배신하거나 거짓을 일삼는다면 사랑이라는 말을 할 수 없다.
많은 정치인들이나 지망생들이 국민을 사랑하기에 자신이 앞장을 선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제의 모습에서 모순을 발견한다.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당선이 되어서 자신이 이끌어가야만 가능한것인가? 그게 국민을 존중해줄수 있는 최선인가? 정말 훌륭한 인격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라면 나보다 더 뛰어나고 국민을 위해서 더 적합한 사람들이 있다면 양보를 하고 뒤에서 조언하고 살아가는 것은 잘못된 방법인가? 참으로 부적합하고 결격이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설치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선출된 대표들이 대중을 이끌어가는 공화정시대이기에 누군가는 지도자로 선출이 되어야 한다. 자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대중 앞에 나서는 사람은 나의 잣대가 아니라 남의 잣대로 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갖었으면 한다. 주변에서 혹세무민하는 자들에 의해서 눈이 멀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가톨릭전례는 시작하는 제일 앞부분에서 가슴을 치면서 고백하는 말이 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탓이로소이다." 아마도 초기 교회시작부터 전례를 하기 앞서서 나의 허물을 돌아보면서 겸손되이 하느님께 내 죄를 고백하는 것이야말로 미사를 참례하는 가장 기초적인 자세이기에 서두에 집어 넣었을 것이다.
오늘도 뉴스를 접하면서 국가를 위해서 나선다는 사람들의 소식으로 혼랍스럽다. 그들도 하루를 시작하기 앞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가슴을 치면서 시작해보라고 요구한다면 그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일까?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