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과 사용권
어제는 베트남 성지순례를 언급하면서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신앙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베트남 신자들에 대해서 언급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물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재물을 많이 가진자들의 삶이 성공한 삶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아무리 고위 관직이나 명예를 얻었다고 한들 재물을 얻지 못하면 성공한 삶으로 보지 않는다. 너무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냐고 누군가 되묻는다면 사회적으로 드러난 현상에서 답을 찾아보라고 하고싶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이라면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누구나 할것없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최대한 재물을 얻으려고 혈안이 되있는것을 우리는 최근에 너무나도 많이 목격했다.
난 세상에게 묻고 싶다. 과연 재물을 많이 얻은 것이 성공의 삶이요, 덜 얻은것이 실패의 삶인가? 그렇다면 자고 일어났더니 재벌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저절로 성공한 삶이 될것이다. 그의 살아가는 모습이 어쨌든간에… 그가 설령 마약을 하고 사기를 치고 사람들을 죽이더라도.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 변하지 않고서는 결코 재물에 대한 끝임없는 탐욕을 바꿀수 없다. 진정한 성공이란 자신이 하고 싶은것을 성취했을 때 그 재물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존경받을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만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정자들과 사회의 지도자들이 가치관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를 이끌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지속적으로 실패를 했다.
그럼 우리가 그토록 갖고 싶어하는 재물의 본질은 무엇일까? 난 재물을 소유권과 사용권으로 구분하고 싶다. 30년도 더 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금은 시집을 간 조카들이 5살 정도였을 때 이야기다. 시집을 간 여동생 가족이 시부모가 지방에 내려가셔서 모처럼만에 명절 당일에 올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삼춘이 내가 그냥 있기가 뭐해서 백화점에서 인형을 사갖고 왔다. 선물을 받은 어린 조카는 밥을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열심히 갖고 놀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는데 둘째 여동생도 가족과 함께 온 것이다. 첫째 여동생과 둘째 여동생의 딸들은 동갑이었다. 조카 둘이서 인형을 갖고 싸우기 시작했다. 서로 갖고 놀겠다고… 나한테 선물 받은 조카가 소리질렀다. “내거야”
선물 받은 아이는 인형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조카는 막무가내였는데 아마도 떼를 쓰면 자기가 갖고 놀수 있다고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 더 사주기로 해서 간신히 달랬다.
집에 돌아오는데 조카가 “내거야”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아이는 인형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소유권이란 무엇일까? 난 모든 사물의 소유자는 하느님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소유자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사용권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말하시냐?고 누군가 물어오면 난 늘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다. “죽을 때 못갖고 가잖아요.”
우리는 하느님으로 부터 재물을 사용할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위정자들과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갖고 가지도 못할 재물에 대해서 조금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면 어떻겠냐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있는 프란치스코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