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걸레처럼 살고 싶다
사순 3주일의 복음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예수님의 성전 정화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성전 정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도 자신의 성찰을 통한 자기성화에 동참하길 바라고 계신다. 자신을 정리정돈해야 이루어지는 성화를 묵상하다가 문득 걸레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걸레는 집안 살림을 하다보면 꼭 필요한 물품 중에 하나다. 하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는 감히 ‘도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하찮게 여겨진다. 하지만 살림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청소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 어머니와 아내들은 날마다 때마다 걸레질하며 집안을 깨끗하게 지켜왔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이 바뀌어 걸레질하는 모습도 예전만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무릅을 꿇고 기어다니며 닦아야 하는 걸레질이 불편하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 건강도 상하게 되다보니, 걸레질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빗자루와 걸레가 했던 역할을 진공청소기와 스팀청소기가 대체하고 있다. 걸레질을 하더라도 밀대로 바닥을 문지른다. 참으로 편한 세상이 온 것이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긴 했으나 지극한 정성인지라 정성으로 집안을 돌보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걸레질을 통해 말없이 느끼곤 했는데, 아무래도 진공청소기와 스팀청소기로 하는 청소와 같은 마음을 느끼기가 힘들어진 셈이다.
걸레질이 갖는 의미는 또 다른 것에도 있다. 걸레는 결코 깨끗한 천을 사용하는 법이 없었다. 쓰다 쓰다 더는 못쓰게 된 천을 마지막으로 이용하는 것이 걸레다. 형이 입었던 옷을 동생이 물려 입다가 더는 물려 입을 수 없게 된 낡은 옷가지가 그랬고, 한 아기를 다 키운 뒤에 기저기와 수건이 그랬다. 어느 물건 하나 헤프게 쓰지 않는 알뜰함 이 걸레에는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걸레질을 통해 모든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배워 나갔던 셈이다.
걸레는 자신이 더러워지는 만큼 집안을 깨끗하게 한다. 자기가 더러워질수록 집안이 깨끗해지는 것을 걸레는 알고 있다. 더러워진 몸을 물에 빤뒤에 비틀어 짜 다시 깨끗하게 하지만, 그것 또한 다시 더러움을 닦아내기 위한 준비일 뿐이다. 그렇다고 걸레가 자기가 한 일을 크게 인정받는 것도 아니어서 자기가 할 일을 마치면 언제나 구석자리로 돌아간다.
글을 쓰면서 나의 삶도 ‘걸레같은 삶을 살았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아무래도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 걸레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내세우는 법 없이 더러움을 닦아내고 그리고 더러움을 닦아내기 위해 늘 더러움보다는 조금 더 깨끗하게 준비하고 있는 걸레 같은 사람 말이다. 그러고 보니, 걸레처럼 사는 것도 결코 쉬운 삶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