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는 것보다 용서를 청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용서하기란 참 힘이 든다. 용서했다고 생각해도 불쑥 용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런 마음을 발견하면 용서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것인지 알게되니 그저 참담할 뿐이다. 어쩌면 용서한다고 하면서 용서하지 않고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용서를 한다는 게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 또한 잘 알면서도 말이다.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은 삶 안에서 정신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든다. 그래서 많은 영성학자들이 말하길 사랑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이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고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이 용서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용서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가 건너가야 하는 다리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미움의 대상을 보면 한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나 가까웠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좋았던 마음이 작은 일에서 미움이 싹터 크게 증오의 열매를 맺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기대심이나 희망이 무너질 때 미움은 그 틈을 비집고 나온다. 미움이란 원래 가까움과 친밀함을 먹고 싹을 틔우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상관이 없을 때는 미움이 생길 여지가 별로 없다.
돌이켜 보면 미움은 나를 파괴하고 인생을 파괴함으로써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생을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여태까지 용서라는 말을 떠올리면 남들이 나에게 잘못했을 때 내가 남에게 용서를 베푸는 것만 생각했지 내가 잘못해서 남으로부터 용서를 청하는 경우에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다. 남이 나를 용서하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소홀하게 생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내가 남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서 별로 의식을 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대부분 그럴 때 ‘살다보면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아프면 남들도 아프다는 것을 간과하면서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쩌면 용서를 청해야 할 일이 용서를 해주는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았을지도 모르는데도, 나는 스스로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일은 등한시해왔다.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용서하는 일보다 용서를 청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대체로 남을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갖는데, 내가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갖고 있지 않습니다. 별로 잘못한 것이 없다고 자부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용서받을 필요를 많이 느끼는 사람이 남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용서할 줄 아는 사람보다 용서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먼저 내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