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위해서라면
오늘이 2022년도 마지막 날이다. 무슨 글을 쓸까? 고민을 하다가 끝내 믿었던 친구의 배신이 생각났다. 말로는 용서를 외쳤지만 가슴에서는 아직도 준비가 덜된것 같았다. 그러한 잔상등이 나를 괴롭힌다.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싶다. 아름다운 우정을 생각해본다.
고려 말 신돈이 권세를 부리고 있을 때, 경상도 영천에 최원도라는 양반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최원도가 반쯤 미쳤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다. 실제로 그는 한 끼에 밥 세 그릇을 먹어치우고 방 안에서 용변을 보며 자기 방 근처엔 아무도 못 오게 하는 등 증세가 자못 심각했다.
아무렇지도 않던 사람이 갑자기 미쳐버리자 그의 아내는 이를 수상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의 수발을 들고 있던 제비라는 계집종을 조용히 불러 남편을 감시해 그 이유를 밝히라고 지시했다. 결국 제비는 상전이 벽장 속에 낯선 두 사람을 숨겨두고 밖으로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미친 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최원도가 미친 척까지 하면서 숨겨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집과 그의 아버지 이당이었다. 이집은 이색, 정몽주와 더불어 고려 말의 소문난 충신으로, 신돈의 포악한 정치를 비판하는 상소를 조정에 올렸다가 신돈의 비위를 건드려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그러자 이집은 아버지를 업고 멀리 친구가 있는 영천 땅 최씨 집으로 피신을 온 것이었다. 그후 이집과 그의 아버지는 2년여 동안 벽장 속에 숨어 살았으며, 그동안 최원도는 미치광이 노릇을 계속했던 것이다.
자기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우정을 지킨 최원도,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최원도 같은 친구를 갖고 있는 이집이 부러워지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따뜻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친구가 곁에 있기를 소망하고 누군가에게 이런 친구가 되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살아간다. 단지 문제라면 현실이라는 장벽이 이상보다 항상 먼저 선택된다는 점이다.
마음 속으로는 친구에게 잘하려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진정한 우정이란 잘하려고 하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길 때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우정을 나무를 심는 것으로 비유를 해보면 우정을 갖는 것은 땅에 씨앗을 뿌린 것이고, 이렇게 마음이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씨앗은 묘목이 되고 점점 나무로 성장해간다. 이 우정의 나무가 겨울 추위에 얼어죽지 않고, 여름 폭풍우에 꺽이지 않게 하는 것은 우정을 지속해가려고 노력할 때이다.
진정한 우정을 이어가는 것은 끝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우정을 해치는 마음이나 행동을 조심할 때이다. 우정은 사다리 같은 것이다. 우정을 해하는 짓을 하고 다시 우정을 추스르려 할 때는 이미 다른 쪽을 지탱하고 있던 기둥이 없어진 뒤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말에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이 우리의 우정에 적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