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아름다운 퇴장을 원한다
사람은 때가 되면 물러나는게 자연의 법칙이다. 생명이라면 죽음이라고 표현하고, 직장에서는 이를 은퇴라고 한다. 요즘 학교에서는 교사로 근무하신 분들이 은퇴를 하시는 시기다. 은퇴를 하실때보면 여러 가지 모습들이 보여진다. 은퇴하시는 분들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시는 모습, 혹은 은퇴하시는 모습을 덤덤히 바라보는 모습…
자신이 어떻게 살았느냐?가 그분이 퇴직할 때 잘 드러난다. 그래서 혹자는 말한다. 평상시에 잘사는게 중요하다고.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진정한 모습이라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자신의 퇴장을 스스로나 규정된 룰에 의해서 결정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중 한 집단이 정치인들이다. 선출직인 정치인들은 민중이 뽑아주지 않으면 그 순간에 은퇴하는 것이다. 물론 낙선이 되더라도 잘 준비해서 다시 당선이 된다면 컴백이라는 말이 적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대중으로부터 잊혀지지 않으려고, 그리고 다시 당선되거나 더 높은 선출직으로 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한다. 그 노력 자체는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지나쳐서 때로는 자신의 의정활동을 돌아보지 않고 오버를 하게 되고 그 오버가 자신에게 독으로 돌아오는 경우 요즘 흔히 접할수 있다.
요즘 자신이 한 말이 역으로 자신을 공격하는 도구로 돌아와서 곤경에 처한 정치인이나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내 개인적으로 눈쌀을 찌푸리는 일은 자신이 정말로 잘못한게 있으면 쿨하게 사과하면되고, 억울하다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나가면 되는데 억울하다고 울일도 아닌데 울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거의 저주에 가까운 독설로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거의 비슷한 문제로 코너에 몰렸던 상대방을 거의 무차별적으로 비난했던 자신을 정녕 잊었던건가?
사람은 물러설때 잘 물러서야 한다. 특히 자신이 스스로 결정해서 물러날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리고 물러나는 모습이 절대로 가식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지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스스로 받게 된다. 그 상처는 정치적인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고, 그런것을 견디기 힘들때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까지하게 된다. 내가 그 정치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말을 하고 싶다면 물러선다고 모든게 끝나는게 아니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아름답게 퇴장했을 때 다음에 대중들의 간절함 때문에 다시 선택받은 경우도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번 일이 나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굳이 내가 글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번 일로 나의 모습을 또 한번 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그 사람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답은 '절대로 아니다'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양면의 칼날이고 내가 욕하고 비난하는 그 일들이 항상 나에게도 가능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비난 받고 있는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현실태로 드러났을 뿐이다. 우주삼라 만상의 모든 일들은 나에게는 아직 가능태로 남아있다. 다만 현재는 아니라고해서 내 자신 또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 또한 정말로 매사에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그리고 상대방을 감싸주는 겸손함을 가졌는지 생각해보게 되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