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면
지금은 물질이 너무나도 풍족하다. 필요한 것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고 전화나 휴대폰의 앱을 통해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유혹이 많고 그것을 피하려고 하니 피곤하다. 예전에 본당에서 근무하시던 수녀님들이 이동할 때를 보면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새로운 임지로 떠나시는 걸 자주 보았다. 그리고 수도자의 추구하는 삶이 가난, 순명, 정결이기에 예수님처럼 최소한의 물질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던 분이 생각이 난다. 보좌신부 시절에 나보다 젊은 수녀님들이 수도복이 낡아서 짜깁기해 입고 있으면서도 맑고 청순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고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도 천성적으로 물건을 많이 갖는 것을 싫어해서 되도록 이동할 때마다 짐을 줄이긴 하지만 여전히 소형트럭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이사를 할 수가 없다. 여전히 나에게는 갖고 싶어 하고 채우려는 욕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런데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껍질이 두꺼운 달팽이는 자신의 보호하는데는 유리하지만 더 이상 자라게 하는데는 방해를 해서 결국에는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한순간의 만족스러움이 지속적인 만족이나 기쁨으로 반드시 이어지지는 않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정원의 장미도 적당한 햇살과 빗물을 통해서 잘 자란다. 하지만 장미는 물이 풍성하다못해 넘쳐나는 장마 시기에는 오히려 꽃이 시든다. 장미꽃을 흉물스럽게 만드는 원인은 정원에 물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뿌리를 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아름다움도 남이 가진 것을 다 갖고 싶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필요한 것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을 장미꽃을 보면서 배워본다.
텅빈 항아리에서 아름다운 메아리가 나오듯 텅빈 마음에서 삶의 아름다운 메아리가 울리는 법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말씀을 외치고 다닐 제자들에게 자신이 의지할 지팡이 외에는 여벌의 옷, 돈, 신발도 지니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가진 것 때문에, 또 갖고 싶어하는 것 때문에 밝고 청순함을 잊고 사는 이가 어찌 나 하나뿐이겠는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제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 자신을 위해서 필요하기는 하지만 과도함을 피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양떼를 몰고다니면서 무화과 농사를 짓던 평범한 아모스가 주님께 사로잡혀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메아리가 되었듯이, 또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사도 바오로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제자가 되었던 것처럼, 나도 털어 버릴 것은 과감하게 털어 버려서 주님의 말씀을 메아리치게 하는 빈 항아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