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사순절과 회개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2-19 04:58 조회수 : 78

사순절과 회개


사순시기에 강조되는 단어를 생각해보면 '회개'는 반드시 포함이 된다. 우리를 위해 희생되신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신앙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회개'라는 말을 생각하면 항상 떠올리는 사건이 하나있다.

신학교에 다닐 때 5학년부터 부제까지 약 3년 동안 성가복지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숙자를 위한 목욕탕에서 봉사했었다. 신학생이라는 신분을 속이고 매주 수요일마다 오후 시간에 가서 3시간 정도를 목욕도 시켜주고 목욕 시간이 끝나면 탕도 정리하고, 여유가 되면 노숙자를 위한 옷도 정리해서 나누어 주었다. 대부분이 노숙자들은 목욕하고 그동안 입었던 옷을 버리고 새옷으로 바꿔서 가신다. 그런데 유독 한 할아버지만 목욕은 하시지 않고 옷만 받아 가신 것이었다. 그래서 매번 할아버지께 목욕하시고 새 옷으로 바꾸어 가시라고 권유를 했지만, 할아버지는 늘상 화를 내시면서 옷만 받아 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할아버지께 씻지 않으시면 옷을 못준다고 하니, 할아버지께서 당신은 2년 넘게 목욕하지 않았지만, 냄새가 전혀 안 난다고 하시면서 갈아입을 옷을 달라고 우기셨다. 2년을 안 씻어서 냄새가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심했지만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목욕하시면 옷도 드리고 만 원도 드린다고 하니까 그제야 씻으셨다. 


내가 이 이야기를 언급한 이유는 2년간 씻지 않아도 더러움을 몰랐다고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흉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언급한 것이다. 목욕을 안 할수록 더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냉담한 지 오래될수록 또 고백성사를 본 지 오래될수록 죄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고백성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또 그것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고 쉬워보여도, 씻지 않아서 더럽고 냄새가 나지만 안씻겠다고 하시던 할아버지의 고집을 깨뜨리는 것만큼 어려운 것일 수 있다. 날마다 씻는 사람은 어쩌다 씻질 못하면 견디기 힘들지만 한 달이나 1년씩 목욕을 안 하는 사람은 끈적거림도 가려움도 더러움도 모를 뿐 아니라, 목욕할 기회가 있어도 다음으로 미루기 일쑤다.

영혼의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하느님과 멀어진 지 오래된 사람일수록 잘못한 것도 부족한 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씻듯이 매순간 영혼의 모습을 바라보며서 더럽혀진 곳은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지금은 사순시기다. 사순절은 회개와 반성을 요구하는 시기이며 자신이 변화될 수 있는 기회다. 미루고 게을리하고 안일하게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이들에겐 사순절이라는 시기는 피하고 싶은 시간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에게는 지금은 미루는 습관과 게으름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할 시기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