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되찾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2-09 05:51 조회수 : 108

되찾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오늘부터 설날 연휴가 시작되었다. 며칠 전에 신자들로부터 떡국용 떡을 선물 받았는데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명절 전날에는 아무리 추워도 어김없이 시장 어귀에 있는 방앗간 주변에서 놀곤 했다. 명절 때는 떡을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가는 어른들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끄럽고 정신없이 떠들면서 놀고 있는 우리들에게 따끈한 가래떡을 조금씩 나누어 먹으라고 한 두 개를 주고 가시곤 했다. 평소에는 자신들의 삶 자체가 퍽퍽했기에 이웃과의 나눔에 부족했던 마음을 명절에 떡을 나누어주심으로 미안함을 보상받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이 어쨌든 지금에 돌아보니 참으로 좋은 추억이었다. 

설날 오후가 되면 모처럼 아이들의 구멍가게 투어가 시작된다. 평상시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군것질로 가게는 생기가 돈다. 콩나물이나 두부 심부름으로 익혔던 주인 아주머니에게 보란듯이 세뱃돈을 내밀며 자신만의 쇼핑을 하면서 뿌듯함을 느껴었다. 그래서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풍요로움이 넘치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는 말이 있었던 같다.


모든 것이 너무 풍족한 요즘에는 모두가 이산가족이다. 명절이지만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조차 보기 힘들고,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고나면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는 제 각자의 삶을 위해서 서둘러 일어난다. 뉴스에서는 몇 십 만대의 차량이 이동하고 해외를 향한 비행기는 만석이며 유명한 관광지는 빈방이 없다고 연신 나온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명절을 외톨이로 지내야만 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해체된 가정의 멍에를 짊어진 사람들, 일이 바빠서 찾아뵙지 못한다고 둘러대지만 고향에 갈 수 없는 아픈 사정으로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지속되는 불경기로 인한 생활고에 지인들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 

남들은 고향을 찾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우리 사회에는 소외된 이웃이 있다면서 그럴듯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뉴스가 방영되고 있다. 아마도 이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같은 날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이 오늘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그동안 살면서 잃은 것은 무엇이며,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살펴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