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나는 나를 잘 알아!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2-06 04:25 조회수 : 92

나는 나를 잘 알아!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본다. 관심있게 보니 예전의 내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다. 오늘 나를 돌아보니 세상에 소풍을 온지가 62년이 조금 넘었다. 나는 내가 어떤지는 정확하게 안다. 새벽에 일어나 간단하게 기도하고 거실에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신 안경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졌고 눈썹 끝이 처져 여덟팔자를 그리고 있다. 허리 치수는 변치 않았지만 아랫배는 D라인이 더 심해지고 있다. 아무리 걸어도 다리는 가늘어지고 외모는 점점 더 변하고 있다. 어디를 보나 젊은 시절의 내가 아니다. 


겉만 그런 게 아니라 속도 달라졌다. 내용은 아는데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떤 사건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했다는 사실만 기억되고 내용은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리고 가끔 글을 쓰다가 내가 뭘쓸려고 했는지를 잊어버리는 때도 있다. 세상에 대한 생각,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모든 면에서 오늘의 나는 10년 전과 많이 다르다. 아니 한 달 전과도 같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언제나 나를 나로 여긴다. 남도 나를 변함없이 나로 대해준다. 의사는 예전 진료 기록을 보면서 오늘의 나를 진단해주면서 생물학적으로 내가 나라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가끔 외국을 나갈 때 등록했던 손가락의 지문이 흐려져서 판독에 애를 먹지만 행정안전부나 외교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지문 정보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세월이 지나서 모든게 변해도 과학적으로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보면 틀림없이 동일인이다.


철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나를 나로 인식하고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철학적 자아’는 늘 변한다. 철학적으로 나를 어떻게 나의 짧은 언변와 사고로 특정할 수 있겠는가. 어느 시점의 내가 진정한 나일까? 오직 현재 시점의 자아만 의미가 있다면 과거에 내가 했던 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나를 잘 알아!’ 흔히 하는 착각이다. 나는 조용한 방에서 혼자 책 읽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살짝 불편함을 느낀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하다. 과거에는 내게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 더 좋다. 부자한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후손들을 위한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 화력발전과 핵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는 데 필요하다면 약간의 부담금을 낼 용의도 있다. 플라스틱을 줄이려고 배달 음식은 절대로 안 시킨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 자연스럽게 망가지는 외모를 꾸미는 데 돈 쓰기를 주저한다. 지성을 뽐내는 사람은 부러워하지만 돈과 권력을 자랑하는 사람은 싫어한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러다고 정말 내가 나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