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 축일을 지내면서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다. 교장으로 근무하던 작년에 근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담임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우리 아빠가 좋은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손을 든 아이들은 그 반 인원의 30% 정도였다. 그래서 손을 안든 학생들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아이들의 대답은 “놀러가지도 않고 텔레비전만 봐요.”
“담배를 피워요.”
“맨날 술만 먹고 밤늦게 들어와요.”
어떤 아이는 “엄마가 그러시는데요, 아빠는 자기밖에 모른대요.”
우리들의 자녀들은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무척이나 관심을 갖고 눈으로 보고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편으로는 살짝 걱정도 된다.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된 가정 안에서 부모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러면서 가정의 질서를 세우는 것은 아버지를 높이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라고 생각한다.
소아정신과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아이들 때문에 상담을 오시는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무엇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말하기를 모든 부모들이 물어보는 공통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고 한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의사는 이처럼 부모가 중심이 되는 질문에 답변은 아이가 중심이 되는 말로 한다고 한다.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부모가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둘째는 아이가 부모를 좋아해야 합니다.”
그렇다. 정말이지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자식들에게 좋은 부모인지를 먼저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좋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 사는 부모가 아니다. 자식과 함께 사는 부모이다. 자신을 잊고 자식에게 매달리는 부모는 분명 후회하는 순간이 오고,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부모의 기대대로 만들려고 자신의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는 부모보다는 오히려 여러 환경이 부족해도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부모를 아이들은 더 좋아한다. 부모의 도리는 아이에게 문제가 없고 다재다능한 아이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로 하여금 자신을 조절하는 능력,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자라도록 해서 아이가 부모로부터 심리적인 독립을 빨리 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자녀를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 자녀가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되는지는 부모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맡겨야 자녀를 살릴 수 있다. 부모는 하느님을 신뢰할 때 자녀를 보낼 수 있다. 믿음으로 자녀를 잠에서 깨우는 부모, 조부모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