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에서 만난 예수
신부로 산 지가 29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겸손을 말하면서도 아직도 생각과 행동에서는 교만을 꺾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봉사와 희생의 삶을 거침없이 언급하지만 행동에서는 여전히 이기적인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하느님과 그분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좀더 겸손하고 엎드릴 줄 아는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알고 있지만, 여전히 고심하고 노력해도 교만과 이기심, 위선과 허세는 좀처럼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완벽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죄인들이 받는 세례성사를 기꺼이 받으심으로써 자신을 인간과 동등하게 만드시는 겸손을 보여주셨다. 세례자 요한 역시 눈 한번 찔끔 감고 몰려온 군중 앞에서 으스대고 뽐낼 만도 했건만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을 지극한 겸손으로 낮추셨다.
오래 전에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이면서 뛰어난 영성가로 알려져 있던 헨리 나웬 신부가 갑자기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 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허드렛일하는 직원으로 사셔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의 저서 20여 권이 모두 베스트 셀러였을 정도로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러나 그는 높은 보수와 명예가 보장된 하버드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정신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서 장애인들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켜주며 잡일을 서슴지 않고 했다. 물론 전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열악했지만, 그는 공동체 안에서 늘 웃으면서 생활했다.
사람들이 왜 그런 고생을 하느냐고 물으면 대답 대신에 미소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는 대중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책으로 대신했다. 그 책에 의하면 “나는 올라가는 길만 신경을 썼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는 말을 듣고 언제나 1등으로 달렸고 하버드대학의 교수직까지 도달했다. 나의 저서는 모두 베스트 셀러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오직 성공을 위하여 더 높이, 더 빨리 정상을 향하면서 오르막길만 끊임없이 달렸다. 그러나 한 정신 장애인을 만나면서 인간이란 어렵고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하여 내리막길을 가끔은 내려와야만하고 그럴때 더 성숙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제로 살면서 오르막길에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는데 내리막길을 통해서 복음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라고 했다.
하느님과 그분이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엎드릴 때 인간은 성숙하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요즘처럼 주인공과 1등만 기억하며 자식들을 ‘왕자’, ‘공주’로 키우려고 하는 우리 세대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를 생각해보지만 ‘겸손은 연약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기에 가장 강한 것이다’라고 깨달을 수 있다. 세례자 요한도 인간의 모습으로 세례를 받기 위하여 오시는 예수님을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맞이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높이고 있다. 자신이 가진 작은 권력, 작은 재물, 작은 명예로 인하여 엎드리기를 힘들어하는 우리는 무엇으로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