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때로는 큰 불행을 가져옵니다
인류의 역사 안에서 큰 불행을 가져온 사람을 떠올려보면 반드시 포함되는 사람이 히틀러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흉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싫어했던 유대인, 슬라브 민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등을 수용소를 만들어서 가둬놓고 무려 천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히틀러의 끔찍한 만행을 막기가 불가능했을까? 그리고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때 당시의 독일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러한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말로 몰랐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당시 나치는 국민들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었고, 대량 학살과 관련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책을 강구했기 때문에 당시 독일인 수용소의 존재를 알면서도 진실을 파헤치려는 마음이 없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상황이 몹시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판사, 경찰, 변호사, 성직자, 사회복지사의 숫자만해도 수만을 헤아렸다. 독일의 많은 대기업들은 유대인들과 전쟁포로들을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고 노예처럼 부리면서 공산품이나 생산품들을 생산하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었다. 많은 의사들이 유대인 학살이 주범인 하인리히 힘러가 만든 의학연구소와 합동연구를 했고, 전문적 살인과 생체실험에 동참했다. 많은 군인들은 유대인들을 색출하는데 동원되었고 그들의 최종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당시 상황을 외면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는 대답하지 않는다’라는 그들만의 불문율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논리적으로 방어했다. 그런 논리가 나치즘에 동조하고 있던 자신에 대한 충분한 변명이 되어주었고, 그들은 입과 귀와 눈을 닫은 채 자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환상을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의 공범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의 “나는 바로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과 침묵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라는 지적이 뼈아프게 들린다. 직접 죄를 짓는 행위 뿐만 아니라 고의적인 외면이 더 큰 범죄를 방조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나만 편하고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고의적인 태만과 무관심이 더 큰 죄의 원천이라는 것을 깊이 명심하지 않으면 어느 날 문득 그 죄의 결과가 나와 우리 가족을 덮치게 될지도 모른다. 독일인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 패배감과 더불어서 자신들이 '집단 살인의 방조자'라는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