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진화
오늘은 12 제자들의 일원이었던 성 시몬과 유다(타내오)의 축일이다. 그분들의 구체적인 활동은 자세하게 밝혀진 것이 없지만 예수님과 늘 함께 했고 그분을 진심으로 따랐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신앙인의 모범이 되셨다. 오늘 하루를 지내면서 우리들도 예수님과 함께 하셨던 성 시몬과 성 타태오처럼 살았으면 한다. 그것이 신앙인의 최종 목표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코스이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창조된 만물 중에서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의 힘으로 기술문명을 발전시켜왔다. 문자와 뇌파만으로도 컴퓨터를 작동하는 기술도 개발되고 이제는 컴퓨터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Ai도 개발되고 있다. 바야흐로 그동안 상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사물로 다가오고 실제가 되는 세상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간들은 점점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볼 수는 없다.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고 사람들에게 전염병이 옮긴다는 이유만으로 현재도 수많은 가축을 강제로 살육해서 땅에 묻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는 언제든지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 강력한 핵무기도 만들어 놓았다. 기술문명이 발전하여 우리의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비례해서 편해지지 않고 오히려 불편함을 느낀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제자들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원하신 완전함은 다름이 아니라 삶과 마음이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완전함에 이르려면 지속적으로 진화가 필요하다.
진화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신을 계속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고통스럽다고 우리의 진화를 멈추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도태되고 죽는다. 마음의 진화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멈추면 영혼이 죽는다. 원수를 용서하고 악인에게도 자비를 베푸는 일, 즉 오른뺨을 맞았을 때 다른 빰마저 대주고, 싫은 사람과 함께 걸어가 주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고통이 따른다.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때로는 나의 손해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고통과 손해를 통해야만 하느님을 닮은 완전함을 향해서 진화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완전함에 이르는 통로다. 예수님은 그 고통과 손해의 멍에를 지고 온유하고 겸손하게 그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길에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완전함에 초대받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있고, 곱게 늙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시간이 지나면 늙어가는 그 육체를 통해서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