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는 미신인가?
오늘부터 시작되는 9월은 ‘순교자 성월’이다. 신앙을 위해서 여러 가지 고통을 이겨냈고 끝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하느님께 봉헌하신 순교자들을 닮아가기 위해서 우리들은 오늘 하루도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16세기 말 중국에서 선교한 마태오리치 신부와 예수회원들은 선교에 힘을 썼다. 그런데 선교에 가장 큰 걸림돌은 유교문화에 깊이 뿌리를 잡고 있던 제사 문제였다. 그래서 제사를 효도의 또 다른 표현이라 보고 허용했었다. 그러나 문제는 예수회보다 반세기 늦게 중국에 들어가 선교를 시작한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가 조상제사와 공자 공경의식을 미신적 행위로 단정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에서 큰 곤욕을 치르고 박해를 받다가 결국은 중국에서 철수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여파는 중국에 사대문화가 있던 조선에도 그래도 영향을 끼쳤다. 1791년 선비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조상이 제사를 폐지하고 그 신주를 불태워 버렸다. 이 사건은 효를 근간으로 하는 조선 유교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정조 임금은 두 사람을 사형에 처하고 천주학을 금지시키며 서학책을 불태워 버리도록 명령하였다. 이후 조상제사와 문화적 차이에 의해서 발생된 박해는 백 여년이나 지속 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도 많은 교우들이 제사에 대해서 오해를 하시고 계신다. 교회에서 정의 내리고 있는 제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교가 강조하는 효의 정신은 생명을 주신 부모와 선조께 감사의 보답을 드리는 데 있다.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효는 부모님께서 살아계셨을 때는 물론 돌아가신 다음에도 계속되어 ‘죽은이 섬기기를 산 이 섬기듯이’로 이어지며 특히 제사를 통해 실천된다.
제사를 지낼 때 돌아가신 조상님이 와 계신다고 믿고 절하면 미신행위가 된다. 영혼이 음식을 들 수 있도록 청하는 축문(祝文)이나, 고인이 음식을 들 수 있도록 모두 방에서 나와 문을 닫는 합문(閤門)등은 미신적 행위가 될 수 있으므로, 대신 적절한 복음을 낭독하고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한 짧은 묵상기도를 바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아울러 위패는 신위(神位)라는 글자 없이 다만 이름만 써서 모시기를 권한다.
우리가 제사를 드리는 것은 부모와 선조와 하느님께 효성을 드리기 위함이요,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조상과 일치를 이루고 가족 공동체의 화목과 유대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제사의 정신은 자신의 뿌리인 조상님께 대한 감사이며 그동안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고향 공동체에 모여서 조상을 생각하고 간단한 음식과 음주를 통한 친교의 장을 펼치는 매우 아름다운 전통이다. 또한 조상 기일의 미사 봉헌은 효성스러운 행동인데,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제사는 바로 미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로마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