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와 회개
잡초란 무엇일까? 어렸을 적에는 쓸모없는 풀을 잡초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틀린 생각이었다. 세상에 필요없는 풀은 없다. 오이밭에 어쩌다 자라난 참외덩굴은 밭주인에게는 잡초일 수밖에 없다. 오이의 수확에 방해가 되니 뽑아 버려야 한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들이 흡수할 양분을 빨아들이며 자랐다. 아마도 포도나무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무화과나무는 포도밭에서는 잡초에 해당된다. 그런데 3년이 지났는데도 열매를 맺지 않자 주인은 일꾼들을 불러 베어 버리라 명한다. 포도밭 주인에게는 너무나도 합당한 결정이다. 그러나 포도원 관리는 무화과나무를 감싸고 주인에게 한 해만 더 시간을 달라고 청한다. 거름을 주고 보살펴서 내년에는 반드시 과일을 맺게 하겠다는 말을 남긴다.
여기서 포도밭 일꾼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무화과나무에 이미 어느 정도 공을 들였기에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나무를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무화과나무에게 넘어갔다. 살아남으려면 멋진 가지와 잎을 무성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열매를 맺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약간 생뚱맞은 것 같지만 나는 이런 변화를 회개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싶다. 이 성경의 내용 앞에서 예수님께서 두 번 씩이나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루카 13,5)라고 말씀하신 것이 뇌리에 남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포도원 관리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회개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루는 고독한 노력이 아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포도밭에서 재배인 역할을 하시는 예수님의 은총이라는 거름이 우리를 돕는다. 이 말은 우리들의 회개를 돕는 예수님의 은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읽고 묵상을 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되돌아본다. 요즈음 우리 사회 전반에서 회개란 말이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만큼 사람들에는 무관심한 말이라는 뜻이다. 분명해 보이는 비리를 폭로해도 그 때마다 진실게임이 벌어진다. 엉터리 폭로라고 우기면서 버틴다. 실제로 자행한 비리도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기 전까지는 모함이나 마녀사냥 이라면서 부정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회개하기 보다는 양쪽 모두 서로를 죽일 듯이 공방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하기도 한다. 설령 사실이 밝혀져도 결국에는 법정으로 가서 사법의 판단에 의해서 결론이 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사회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만일 비리를 인정하면 모두가 둘러서서 단죄를 하면서 손가락질을 한다. 특히 그래서 정치에서는 뻔히 드러나도 용서를 청하지 않는다. 그리고 웬만하면 버틸 수 있는데 까지 버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서로 관용을 베푼다면 훨씬 쉽게 회개할 용기를 가질 텐데 하는 마음을 가져보지만 사회가 이익집단이라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신앙인들 만이라도 주님께서 회개를 위하여 은총을 주셨듯이 우리도 스스로의 회개를 위하여 서로가 관심과 사랑을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