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와 그리스도인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7-18 15:29 조회수 : 41
양극화와 그리스도인
요즘 경제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과 언론에서는 경제상황에 대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를 쏟아낸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경제위기와 경제성장은 정반대인 상황인데도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있다. 경제위기를 말할 때에는 ‘경제의 몰락이 가져올 공포심’을 극대화 하면서 노동자의 양보를 강조하면서 기업이 위기를 극복해야 일자리도 유지한다고 강조한다. 성장과 발전을 노래할 때에도 이익들을 분배를 통해서 골고루 혜택을 주기 보다는 세계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한다면서 아직 시기상조라는 말로 늘 기업의 입장을 대변한다. 혹시 그들은 기득권인 일부 특정 계층에게만 유리한 발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기득권과 소외받은 사람들을 상징하는 ‘양극화’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사실 ‘양극화’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언제나 빈곤화 곧 ‘비인간적인 삶이 여건’에 놓여 있거나 놓일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세상은 발전하고 성장했는데, 가진 자들은 더욱 많이 갖고 소외된 사람들은 점점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불균형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여당의 한 당직자가 노동자들의 초소보호수단인 실업수당을 갖고 시럽수당이라고 비하하는 발언하면서 수급자를 파렴치범으로 호도했다. 불경기나 피치못할 사정에 의해서 해고된 사람들이 구직활동을 하는 몇 개월동안 국가로부터 초소한의 실업수당을 받는다. 이것도 국가가 공짜로 주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노동자의 급여에서 강제로 떼어서 보험을 들게하고 국가에서 일부분을 보조해 준 것이다. 어쩌면 노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평생동안 실업수당을 받지 않는게 소원일 것이다.
교회는 이 심각한 불균형과 불평등이 상호불신과 증오, 분쟁과 환난을 일으키며, 인간의 탐욕이 그 원인이며 그와 동시에 희생 제물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성경 안에서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른 자들”을 꾸짖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기득권층들은 경제 발전에 의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 싯점에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교회는 올바른 비판보다는 시류에 편승을 해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그 안의 수많은 구성원들 중에 중산층 이상만 남고 절대적인 도움을 필요한 이들은 교회 안에서 조차 초라해지고 그래서 결국은 교회를 떠나는 현실이 눈에 펼쳐지고 있다.
소외받고 있는 이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이질감에 교회는 깊이 공감대가 형성해야 한다. 사회가 일하고 싶어도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이들에게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라” 거나,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훈계하는 기득권층을 향해서도 분배의 미덕을 베풀라고 비판 할 줄 알아야 한다. 전쟁과 반란, 큰 자연재해와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웃의 불행이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른 자들이 꾸민 ‘인재’라는 것도 외칠 줄 알아야 한다.
근거는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