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식탁
예수님의 삶 안에서 식사는 강한 상징성과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것이 성체성사 안에 수렴되어 신앙생활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그 의미를 이런 말로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고린 10,17)
예수님의 삶에서 식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은 그분의 궁극적 관심사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데에 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 곁을 떠나실 때가 가까워지면서 남겨주신 기도 속에서 그분의 뜻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21-22)
그런데 예수님의 식탁에 초대된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멸시받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마태오가 그랬고 자캐오가 그랬다. 그분은 아무도 초대해 주지 않던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신 행동은 당시로는 혁명적이었던 것이다. 잔치나 식사는 사람들의 성향을 잘 보여 준다.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을 통해서 그 집주인의 사회적 위치나 신분을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유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처지가 비슷하거나 함께 어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초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셨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꿰뚫어보신 것이다. 그리고 당신 제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셨다. 루가복음 14장에서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말씀 안에서 세속의 자녀와 하느님의 자녀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계시는 것이다. 같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형제들의 식탁답게 모든 이가 한데 어우러진 따스한 분위기 바로 그것이 제자들의 잔치이며 하느님나라의 잔치인 것이다. 미사는 이를 위한 훈련의 장소와 시간이며, 이런 반복적인 훈련은 우리가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그분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도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