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을 통한 가르침
마태오 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모습이 아니다. 딸의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하는 여인에게 단 한마디로 거절하셨다.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을 깨는 모양새이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마태 15,26)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여인을 개 취급했다.
그 여인이 예수님께 무리한 요구를 했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상황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여인은 메시아라고 믿는 예수님께 사랑하는 딸의 병을 고쳐 달라고 지극히 인간적인 간청을 했을 뿐이다. 어머니라면 당연히 원하고 바라는 지극히 소박한 청이다. 그런데 그런 청을 들어주기는 고사하고 망신을 주시니 예수님답지 않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딸의 병을 고쳐 달라는 절박한 간청을 거절당한 여인은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까지 상해서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붓고 떠나련만 더 간절하게 매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자존심을 밑바닥까지 내려놓으면서 그는 자식의 병을 고쳐야겠다는 일념으로 더 애절하게 매달린 것이다. “주님, 개 취급을 해도 좋으니 제 자식의 병만은 꼭 고쳐 주십시오.”라며 겸손하면서 애절한 마음으로 읍소했다.
이 말에 감동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딸을 고쳐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대로 될 것이다.”(마태 15,28) 그 여인은 자신의 딸의 병을 치유받는 기적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의 인증까지 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병든 딸을 치유해 주시고 그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거절’이란 방법을 사용하신 것이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예수님께 끊임없이 그 무엇인가를 청한다. 그러나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때도 많이 있다. 그럴 때 우리들의 반응은 개인의 성향과 신앙심에 따라서 다양할 것이다. 우리는 마태오 15장에서 한 가지는 꼭 배웠으면 한다. 예수님은 거절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가나안 여인에게 믿음을 키워준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때로는 같은 방법을 쓰실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이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가나안 여인처럼 물러서지 않고 더욱 더 간구하는 믿음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속이 좋은 사람이라도 거절당하고 반대 받을 때는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자존심에 상처도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잘 다듬으면 인격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킬 수 있는 기회다. 그러고 보면 성숙한 인격을 갖고 있은 사람일수록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성찰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절박한 상황에서 청을 거절당한 여인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갖고 주님에게 나아간 덕분에 큰 결실을 맺은 것처럼, 우리도 거절당하고 반대 받을 때 포기하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찾고자 노력한다면 더 큰 은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