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죽은 친구의 사진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4-04 05:35 조회수 : 105

죽은 친구의 사진 


앨범을 정리하다가 오래전에 고인이 된 친구의 사진이 나왔다. 나는 그 사진을 손에 들고 한참 동안 옛 생각에 빠졌다. 그와 나의 만남은 군대에서 이루어졌다. 훈련소에서 늘 배고파하던 그 친구였고 나는 훈련소 식사가 입에 맞질 않아서 내 식사의 대부분을 그에게 양보를 했었다. 그런 나를 보고는 ‘천사’라고 하면서 쉬는 시간에는 항상 옆에 있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훈련소에서 처음으로 함께 성당이라는 곳도 갔다. 군대를 제대하고 우연찮게 연락이 되어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은 만나고 이런 저런 소식을 전하던 사이였다. 


그의 외모는 산도적 뺨칠 정도로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생긴 것과는 달리 마음은 순수했고, 그리고 깊은 정을 간직하고 있었던 친구였다. 그는 평소에는 말이 별로 없었고 술 한 잔을 해야만 자신의 속 이야기를 내비추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변명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화나는 일이 생기면 평소에도 붉은 얼굴이 더욱 시뻘개지며 그저 겸연쩍게 웃는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그래서 남들로부터 오해를 많이 받곤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바보 같았던 친구였다. 

그러던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라는게 참으로 묘한 데가 있다. 장례식장에 갔을 때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는데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잊고 있었다. 


성지 주일을 강론을 준비하면서 문득 그 친구 생각이 났다. 그의 모습은 수난 후에 영광을 받은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예수는 군중을 위해서 자신의 전부를 바치셨다. 하느님 앞에서는 백성의 잘못을 혼자 책임지고, 백성을 향해서는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감싸주고 가르치며 함께 살았지만 그를 알아주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결국 그분은 그 사람들한테 십자가형을 선고 받아 죽고 말았다. 예수님의 삶은 무척 고단했지만 다만 몇몇 사람의 이해 속에서 말없이 혼자 자기의 아픔을 속으로 삭히셨을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도 않았으며, 죽음의 순간에도 백성의 잘못을 하느님 앞에서 책임지며 변명하고 용서를 구하신 분이셨다. 율법학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않던 이가 빠진 듯이 후련해했고 빌라도와 로마 병사들은 어쩐지 불안해했고, 제자들은 아쉬워했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 아무도 허무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보라고 하거나 미쳤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제자들도 그의 죽음과 부활 때문에 맥이 빠지고 풀이 죽은 아니라 오히려 기가 살아났으며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에게는 삶에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는 힘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