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새해와 하느님께 대한 순명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1-01 04:34 조회수 : 78

새해와 하느님께 대한 순명


오늘은 2025년이 시작되는 날이면서 '천주의 모친 마리아 대축일'이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면서 성모님의 '순명'을 생각해 보았다. 젊었때는 '순명'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림동으로 발령받기 이전까지만 해도 항상 주교님들로부터 어느 곳으로 발령받을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받아왔다. 이 말은 새롭게 부임하는 장소에서의 사목에서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과 동시에 사목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마다 하느님께 순명한다는 마음으로 피하지 않았다. 사제의 덕목 중의 하나가 순명이기 때문이다. 순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화가 생각난다. 


어느 날 당신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두 명의 젊은 청년들이 성인을 찾아왔다. 성인은 두 사람에게 밭에 가서 배추의 뿌리를 하늘 쪽으로 심고 오라고 했다. 그러자 한 명은 가서 말없이 그 바보같은 일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한 청년은 배추를 거꾸로 심으면 죽을 것이 뻔한데 바보같은 행동을 왜 시키냐면서 성인에게 따졌다. 그리고는 지시가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 사람들에게 수도 생활의 기본인 순명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졌는지를 시험했던 것이다. 수도 생활이라는 것이 때로는 세속 사람들의 눈이나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에게도 순명이 꼭 필요하다.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절대적인 순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순명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시각에서 본다면 순명은 항상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 예는 성서 안에서 쉽게 그리고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늙어서 겨우 얻은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요구받았을 때 아브라함의 심정과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가브리엘 천사의 전갈을 받은 마리아의 마음이 어땠을까? 인간의 눈에는 황당하고, 무모한 명령처럼 보인다. 


믿음과 순명이란 언제나 시련과 아픔을 통해서 성숙된다.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한 마디 이유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던 아브라함의 순명은 얼마나 고뇌와 번민을 우리는 짐작조차 못 한다. 반면 자식은 커녕 주어진 시간의 일부분과 지폐 몇 장 봉헌하기도 한참 동안 망설이는 우리의 모습은 아브라함과 성모님의 순명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순명을 통해서 당신의 역사하심을 위해서 나를 변화시키려 하신다. 성 프란치스코의 말씀에 순명하고자 끝까지 배추를 거꾸로 심은 수도자의 순명 정신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었음을 묵상을 통해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