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과 용서하세요
올 한 해가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일 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어제는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혼돈의 사회가 잘 극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묵상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이 생각이 나서 급하게 인터넷을 찾아서 간략한 서평을 읽어보았다. 모든 것이 자유분망했던 대학생 시절에 읽었을 때도 잔잔한 감동이 있었는데 지금 서평을 읽으면서 눈을 감았더니 예전에 느꼈던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깊었던 것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 네프류도프는 자신 때문에 모든 일상이 망가진 이모네 집 하녀 였던 카츄사를 위해서 자신이 갖고 있던 토지와 재산을 팔아서 카츄사가 구금되있던 감옥 근처에서 오랫동안 석방을 위해 노력했지만, 막상 형무소 소장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뜻하지 않은 유혹을 받게 된다. ‘아, 이거구나. 이 따뜻한 집과 좋은 음식, 유쾌한 사람들, 내가 살 곳은 바로 이곳이 아니었던가!’ 자신은 카츄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편하게 살고 싶다는 본성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카추샤를 따라 나섰던 그였고 오로지 카추샤의 석방을 고대하면서 결혼까지 다짐했던 그였지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어느새 과거의 타성에 빠진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그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다음 날 카추샤를 만났을 때였다. 그는 카추샤의 죄수복을 보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어두워짐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카추샤의 마지막 작별 인사 한 마디였다. “용서하세요.”
“안녕히 지내셨어요?”가 아니라 “용서하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카추샤가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고 있고, 자기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떠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또한 유형지에서 카투샤를 돕기 위해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평화롭고 기뻤던 시간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제 그는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톨스토이가 이 소설의 제목을 부활이라고 정한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변화를 꿈꾼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때로는 무리하거나 부당한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때로는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무력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성공을 꿈꾼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부활을 통해서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갖고 있는 단 한 가지도 내려 놓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용서 하세요.” 이 한 마디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아름다운 말이다. 네프류도프가 얻은 선물은 바로 이 한 마디였다. 진정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은 그 자신이었는데, 오히려 카추샤가 용서를 빌며 떠나고 있었다.
일 년동안 지내온 나의 삶, 그리고 현 시국 상황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한없이 밀려들지만 결국 용서는 우리 몫이 아니라 하느님의 몫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