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그리스도인이 분노해야 할 때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1-06 21:18 조회수 : 87

그리스도인이 분노해야 할 때


누군가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고 물어온다면 난 주저없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목숨 바쳐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은 일을 하고 세상을 구원하려 오셨는데, 십자가 죽임을 왜 당하셨을까?를 설명해야 질문에 대한 답이 완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은 비폭력 평화주의자이셨다.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마저도 내 주어라” 하시고 실제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위해서 성부께 용서를 청하셨다. 여기까지는 예수님의 자비로운 모습이다.

 

그러나 동시에 바리사이 율법학자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독설로 질타하고 때로는 욕도 거침없이 하셨다. 마침내는 열이 받혀서 예루살렘 성전 장사꾼들의 좌판을 뒤집어 엎으셨다. 여기에서 타협 없는 행동주의자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성전에서 사제들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상권을 장악하고 그 이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자식들에게 세습했다. 오늘날로 보면 정경유착을 넘어 심지어는 어떠한 권한으로도 통제가 쉽지 않은 금융자본, 사람을 해치는데 앞장서고 있는 군수산업, 국가 정보까지 점령한 부당한 특권층들과 같다고 보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막강한 권력층을 대상으로 투쟁했다는 것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예수님의 삶을 묵상해보면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삶을 추종한다는 것은 그분과 동기화되는 것이다. 동기화란 예수님의 삶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우리의 행동에서도 예수님의 생각과 태도, 그분의 모습이 보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서에 있는 것은 그대로 따르면 되고 기록은 없지만 해석이 필요한 것은 양심에 따라서 행동을 하면서 따라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예수님이 긍휼히 여기실 일에 동참을 하고 슬퍼하실 일에 함께 슬퍼하며 화내고 분노하실 일에 함께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칼을 주러왔다.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신 말씀에 깊이 공감을 하게될 것이다.


예수님의 연민과 분노, 어느 만을 보는 것은 신앙의 초심자 때는 그럴 있다. 만약 쪽만 보고 자기 믿음이 옳다는 신념을 갖게 되면 신앙이 성장을 못하고 치우쳐서 사이비가 되기도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은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반대하는데 앞장 수도 있다. 우리들은 위선과 기만이 진리처럼 포장될 , 대통령이나 공직자가 거짓말을 하고 국민을 속일 , 힘이 있는자들이 약자들을 억압하고 인간성이 상품적 가치로 취급받을 , 사회적 책임은 외면하고 자신의 권리만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대항할 , 예수님처럼 분노해도 죄가 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