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그냥 너라서 좋아’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4-08-13 05:27 조회수 : 113

‘그냥 너라서 좋아’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함께하는 시간이나 생각하는 동안에 즐겁고 편안하다. 이야기할 때 상대방을 존중해 주면서, 상대방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직접 실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은 본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기에 욕심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진심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편한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 내 이야기에 같이 빠져들어 주는 사람, 내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슬퍼해주는 사람, 그들이 조건없이 나와 함께 해주는 것처럼 나도 그들에게 뒷동산에 소나무처럼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살다보면 친구나 연인, 동료와 이따금 싸우고 화해하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다툼이 내 의견을 무시하거나 나를 바꾸려는 사람이 있다면 장기적으로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어렵다. 서운한 일이 있으면 대화를 통해서 오해나 감정을 풀고 더 단단한 관계로 나아가면 된다. 하지만 나의 개성이나 정체성을 부정하는 사람과는 오래가기 힘들뿐더러 억지로 인연을 유지하려 해봤자 서로 실망감만 남긴다. 

분명한 것은 아닌 건 아닌 거다. 맞지 않는 신발에 발을 억지로 욱여넣어봤자 발만 망가진다. 아무리 완벽한 친구나 애인이라 할지라도 기대를 온전히 충족하기란 불가능하다. 하물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되길 요구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이 결코 편할 수는 없다. 그는 변하지 않는 나를 답답해할 것이 뻔하고, 나 또한 그런 것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미안함이나 미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나이가 들수록 편협한 사람이 주변에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마치도 자기 생각만이 정답인 것처럼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인생 선배를 자처하며 훈수를 두려고 한다. 부끄러움은 언제나 지켜보고 있는 내 몫이다. 하지만 불편한 사람들이 세상에 많을수록 오래 이어가고 싶은 인연들은 더욱 빛나 보인다. 

‘함께 할 때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 사람,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자주 웃음 짓게 해주는 사람.’ 그들에게 언제나 감사하고 싶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부족하더라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천천히 갚으려고 한다.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큰 행운이다. 

친구가 어느 나에게 해주었던그냥 너라서 좋아라는 한마디, 언제 들어도 기쁘고 감사한 말이다. 그리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당신 모습을 또한 다른 이유없이 그저 당신이라서 좋아하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