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느님이 뿌린 거룩한 씨앗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1-24 20:57 조회수 : 80
나는 하느님이 뿌린 거룩한 씨앗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이다. 오늘 1독서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운명이란 바뀔 수 없는 불변의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떤 이들은 사람의 운명은 하늘의 별이 지상에 내려왔다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하고는 무관하게 가정, 국가와 문화, 성(性), 기질, 성품 등을 하느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부여받고 태어난다. 그러나 태어난 조건이 비슷하다고 모두 같은 삶을 살지는 않는다. 노력이나 여건에 따라서 다른 운명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가난하게 태어나는 것은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부자가 되는 것은 내 몫일 수 있다. 태어난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주어진 조건들을 활용하는 지혜가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좋은 사회란 노력에 따라 운명의 전환이 가능한 사회를 말한다.
주어진 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기질인데 사람마다 ᅠ갖고 태어난 기질이 다르다. 그 다른 조건과 이유에 순명하는 것이 천명을 받드는 삶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손에 열쇠 하나씩 받는데, 각자의 행복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어서 자기 열쇠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기질과 성정을 발견하는 일은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도 성격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쌍둥이라도 용돈을 주면 필통에 꼬부쳐두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주는대로 다쓰고 형제의 것까지도 뺏어다 쓰는 아이도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기질에 따라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이는 돈을 쫓아 애를 쓰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가난을 피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너무나도 쉽게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물은 물이 나올 자리를 보고 땅을 파야 물이 나온다는 것으로 가늠하고 싶다. 예술을 하고 살아야 할 사람이 사업을 하고 셈이 어두운 사람이 과학자가 될 수 없고 문학을 해야 하는 사람이 운동선수로 성공할 확률은 적다. 그러므로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자기 운명을 개조해가는 지혜는 필요하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들은 잘못된 행복관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행복이고 저것은 불행이다’하고 마치 진열장에서 행복을 고를 수 있는 듯 규정을 하고 있다. 자녀가 받은 기질과 성정을 무시하는 부모는 자녀의 불행에 책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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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게 태어난 운명이나 그로 인해서 못 배운 것을 전혀 탓할 수 없다. 씨앗이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면 그것은 씨앗 탓도 농부의 탓도 아니다. 돌밭에 씨를 뿌릴 어리석은 농부는 없기 때문이다. 길거리나 돌밭에 떨어진 씨앗을 까치가 냉큼 주어먹었다가 멀리 떨어진 숲에 똥으로 배출해서 귀한 산삼으로 자랄 수도 있다.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배 백배의 열매를 성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험지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열매를 맺는 삶이 때로는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은 농부이신 하느님의 기쁨이다. 오늘 하루도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의 의미를 새기면서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씨를 뿌리신 하느님의 축복을 충만히 받으시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