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나는 세상에 칼을 주러왔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1-21 21:48 조회수 : 76

나는 세상에 칼을 주러왔다


교회에서는 가정을 신앙의 기초적인 공동체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조건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희생한다. 그런데 가정 공동체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살짝 복잡하고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디. 피는 물보다 진하고 팔은 안으로 굽듯이 혈연의 정에 매인 가족주의 공동체라고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유산을 놓고 형제들끼리 다투다가 결국은 원수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이기적인 문제 앞에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 가족이라도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서로가 존중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는데, 예를 들어서 선거에서 부모와 자식 세대나 때로는 부부 사이에서도 지지가 달라서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전통에서는 아버지는 대의와 체면을 중요시 여기는 반면 어머니는 실리를 소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개인이나 사회나 음양의 원리이고 자연의 법칙이다. 

월남 이상재 선생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며느리가 우는 것을 보고 물었다. 며느리는 “제가 시집올 때 가져왔던 재봉틀을 어제 밤에 도둑맞았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월남 선생께서는 “너는 일본에게 나라를 도둑맞았을 때는 울지 않더니 겨우 재봉틀 하나 때문에 우느냐?” 하고 꾸짖으셨다고 한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개인의 아픔을 사회의 아픔에 우선시 된다. 그것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개인의 행복은 상식이나 사회적 평화와 공존할 때 의미가 있다. 그것은 사랑과 자비만으로는 부족하고 사회 정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의, 사회정의, 정의구현이라는 말만 들어도 알르레기를 일으키는 교우들이 있다.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안정되거나 사회가 변화되는 것을 싫어하는 노인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현재는 어렵고 고되지만 조만간에 자신도 성공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는 사람들도 포함이 된다. 그들은 상류층이나 보수의 편을 드는 것으로 동질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공통점이다. 미국에서도 흑인들이 공화당을 지지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달동네 빈자들이 부자정당에 투표하는 현상이 이런 현상을 증명한다. 


세상의 정치 사회적 문제들이 혼돈에 빠진 듯 보이지만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지만 “나는 칼을 주러왔다. 나는 불을 지르러 왔다” 하신 것이다. 교회는 세상 문제에서 일방적으로 누구의 편들지 않고 선악을 구분을 통해서 선과 정의를 세우려 한다. 그런 교회의 태도는 반대편에 있는 자들로서는 방해받거나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예수님의 말씀은 혼란스럽고 마치 평화를 깨뜨리는 처사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말씀은 통찰해서 우리 삶의 나침판으로 삼아야 한다.  

예수님과 교회의 가르침은 선악이 분명한데도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게 해석하거나 합리화를 구현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서 어긋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