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을 빼고 사랑하자
‘미움과 사랑’은 사람의 감정에서 시작한다. 애인이나 가족, 이웃도 상황에 따라서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미움이 곧 원수는 아니다. 알콜, 도박, 마약, 게임 중독인 자식이나 남편을 '원수'라고 말은 하지만 그건 미움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악령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개인의 평화와 행복을 파괴하려고 한다. 개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악령은 서로 미워하는 애증의 바이러스를 심어놓고 기다린다. 악령의 바이러스 즉 '미움'이 온통 나를 지배하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물론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기도 한다.
사도 바오로는 악령 미움을 심어놓는 일을 '육정의 열매'로 설명하고 있다. 갈라디아서에는 음행, 추행, 방탕, 우상숭배, 원수를 맺음, 마술,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저지를 수 있는 행동이다. 육정이 자라면 악의 열매를 맺게되고 그것은 미움과 악령이 되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미움의 바이러스가 온몸을 점령해서 악령의 결실을 맺어놓기 전에 마음과 행동을 올바르게 하라는 가르침이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미움의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미움으로 악령에게 나를 넘기지 않으려면 몇 가지 작업이 필요하다.
첫째는 사람과 사람의 행위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가 미워하고 있는 상대는 처음부터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말과 행동에 실망해서 미워하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잘못된 행위를 이해해주거나 잘못된 것을 고쳐주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는 화해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알면서도 잘 안되는 것이 용서고 화해이다. 내 이성이나 감정으로는 부족하기에 기도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 하신 것이다.
셋째는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미움의 원인을 보는 것이다. 내게 상처를 준 경우도 있지만, 그 사람이 내 뜻에 맞춰주지 않아서 생기는 것도 있다. 쉽게 표현하면 '네가 나의 아바타가 되어주지 않았다'란 뜻이다. 매사에 ᅠ내 맘에 꼭들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존재는 하느님이 사랑을 담고 창조하셨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꽃을 보고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 역시 하느님이 창조하셨기에 여전히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 소중함은 본래적인 것이고 다만 내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 모습이 미울 뿐이다. 원수를 사랑할 수는 없지만 미운 짓을 제외한 인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은 사랑할 수 있다. 미움 뒤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원수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한다. 사랑받기에 충분한 것을 가진 그에게서 미움을 분리하면 남는 것은 사랑이다. 살면서 우리가 원수라고 여기는 사람을 미워할 이유가 충분히 있지만, 동시에 사랑할 이유도 충분하다. 우리는 미워하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