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버리고 살아서야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1-15 05:15 조회수 : 76
양심을 버리고 살아서야....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계엄령 사태'도 40일이 지나고 있다. 아직도 해결이 안되고 동조자들의 청산이 되지 않고 답답하게 흘러가고 있다. 세상이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12월 3일 이후로 시장에 61조가 되는 어마어마한 돈이 풀렸지만 경제는 여전히 엉망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내가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생각하면 잠을 설치기 일쑤다. 작금에 벌어진 잘못된 일들이 ‘내 탓이오’라고 하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급급한 사람들만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화가 치솟는다.
베드로를 알아본 한 여인이 ‘당신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오?’는 질문에 ‘난 아니오.’라고 발뺌했던 베드로처럼 전부를 부인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그런 부끄러운 과거 때문에 전력을 다해서 살았고 결국은 자신의 주님을 위해서 목숨까지 기꺼이 바쳤지만, 지금 권력자들에게는 그런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게 현실을 이해하려고 해도 상식으로는 납득이 안간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그들에게는 양심이 전혀 없다’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내가 본당에 오기 전에 근무했던 연천에서 동네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었다. 도둑은 5년 된 인삼밭을 깡그리 파헤친 인삼도둑이었다. 얼마나 간 큰 도둑인지 자기 밭에서 인삼을 캐듯 인부 20명까지 고용해서 인삼을 캐서 줄행낭을 쳤다가 뒤늦게 인삼이 사라진 것을 알게된 주인의 신고로 범인이 잡혔다. 그런데 도둑의 말이 걸작이었다. 자신이 인삼밭을 몇 군데 사놓았는데 자신의 인삼밭인줄 알았다고 하면서 선처를 요구했다. 인삼 농사를 지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1년만 기다리면 좋은 가격에 전매를 할 수 있었는데, 양심이 없는 도둑에 의해서 물질적인 피해도 입었지만 정신적인 피해를 입을 것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뻔뻔한 도둑에게는 양심이란 말이 통용될 수가 없다. 자기 양심을 짓밟고도 부족하여 다시 한 번 더 짓밟는 행위와 같다. 남의 인삼농사를 깡그리 망쳐놓고 인삼을 훔친 죄를 용서를 청하기보다 착각이었다면서 자기변명으로 정당화하려는 그 속셈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양심에 따라 선악을 구분하고 행동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회개를 강조하신 것도 잘못을 할 수 있을지언정 양심까지 더럽히면 안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래서 잘못을 뉘우친다는 것은 최소한 양심만은 저버리지 않겠다는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야 한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어려운 것은 그 안에 진심이 담겨져 있어야만 되기 때문이다. 양심을 팔면 가슴을 치면서 치욕을 느껴야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권력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우리가 비록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에 기대를 걸고 사는 것은 지금보다는 내일이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 땅에서 ‘희망’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는가?를 그들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