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와 불타는 마을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2-12-09 16:43 조회수 : 20
광대와 불타는 마을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유명한 ‘어릿광대와 불타는 마을’에 나오는 이야기다.
순회하면서 공연을 하던 서커스단이 공연 준비 중에 불이 났다. 마음이 급한 단장은 마을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공연준비를 마치고 대기중인 광대를 보냈다. 광대는 급히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지금 서커스장에 불이 났으니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불이요! 불이 났어요! 지금 불이 끄지 못해서 번지면 마을이 위험합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광대의 호소를 구경꾼을 끌어들이기 위한 기발한 수법으로 생각하고 손뼉을 치며 폭소를 터뜨릴 뿐 진지하게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광대가 아무리 지금 불이 옮겨붙고 있다고 애원해 보아도 허사였다. 오히려 호소를 하면 할수록 이번에는 제대로 웃길 줄 아는 광대가 왔노라고 더욱 흥겨워할 뿐이었다. 결국 불길은 마을까지 번져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마을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퇴임하시고 은둔생활을 하시고 계시는 베네딕도 16세 교황께서는 이 이야기의 초점을 광대에게 맞춰 신앙을 전하려 하는 사람들, 곧 사제나 수도자 또는 신학자들의 처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에 익숙해진 사람들, 교회의 전통과 사상을 애써 외면하는 많은 사람들과 신세대 젊은이에게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려는 시도 자체가 마치 광대 옷을 입고 불이 났다고 외쳐대는 광대의 모습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의 초점을 살짝 틀어서 보고 싶다. 광대보다는 불길에 맞추어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여기서 불길이 상징하고 것은 무엇일까? 코로나로 인해서 개인주의가 극대화 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사회를 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륜이 무너지고 정의와 진실이 타락하고 물질 만능주의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우리 사회를 뒤덮고, 무신론이 판을 치고 신앙을 갖더라도 극단적인 신흥종교에 관심을 갖는다. 현실은 도덕이 추락하고 개인주의와 폭력이 우리를 잿더미로 만들려고 한다. 그 모든 것들이 광대의 호소에도 귀를 막고 있는 우리에게 번져오는 뜨거운 불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주님은 “늘 깨어 기도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시대의 징조를 알아보고 우리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