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어리석은 질문과 현명한 대답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5-01-27 21:20 조회수 : 79

어리석은 질문과 현명한 대답


우리는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라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나 상대방을 헐뜯기 위해서 내뱉는다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칫 자기 기분에 도취하여 내키는 대로 말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라는 속담은 오랫동안 이런 경험이 축적되어서 생겨난 것으로 생각한다. 새해를 앞둔 지금 나이가 더 들수록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내가 보좌신부로 있을 때 똑똑했지만 짓궂은 고등학생이 있었다. 교리 시간에 선생님 한 분이 오시지 않아서 내가 대신 들어갔다. 그 학생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신부님, 꼭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저는 하느님의 나이가 얼마나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신부님께서 정답을 알려주세요."

아마도 나를 곤란하게 하려고 물어본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 자체는 이미 순수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가 고등학생이 아니라 초등학생이란 그런 질문이 나올 법도 하지만 고등학생이 물어오기에는 질문 자체가 수준을 한참 벗어난 것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잠시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역으로 되물었다. "학생이 생각하기에 하느님은 몇 살쯤으로 추측하고 있어?" 그 학생은 모르니까 물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하느님은 우리와 같은 존재가 아니시기에 나이가 없다. 사람은 태어나서 사회적 동물로 살다가 죽기 때문에 나이가 생겨나지만, 하느님은 태어나시지도 않았고 영원한 분이시기에 나이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느님이 나이가 있으시면 그 자체로 창조주가 아니시다"라는 말도 첨부했다. 

지금도 누군가 같은 질문을 해온다고 하면 역시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그 학생이 기억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런 질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신조어에 악성 댓글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게 무댓글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에 대해서 부정적인 관심을 갖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아무런 관심조차 보이지 않을 때라는 말이다.


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후 7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으신 분이 계셨다. 그분이 대학에서 강의하실 때 세상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해설을 해주셔서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제자 한 분이 그분께 "교수님은 무신론자인 줄 알았는데 무슨 이유에서 세례를 받으셨어요?"하고 묻자 교수님이 답하시길  “여보게, 솔직히 젊었을 때는 하느님 나라가 없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하느님이 계신다는 확신이 드는데 어찌 세례를 받지 않을 수 있는가? 오히려 늦은 감이 있어서 안타까웠네."하고 답변하셨다고 한다. 노교수가 가볍게 받아넘긴 대답이지만 인생의 참맛을 돋구어 주는 현답이 아닐 수 없다.ᅠ요즘 미쳐서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ᅠ우문에 현답으로 차분하게 대처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는 생각이 드니 정말로 답답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