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틸 수 있는 용기
9월도 열흘 이상이 지나갔다. 아직 한여름의 더위와 같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들판의 곡식들과 과수원의 사과, 배들은 제법 모양과 맛을 갖추고 일부는 상품이 되어서 나오고 있다.
최고급 와인을 만드는 포도나 최고의 당도를 자랑하는 무등산 수박이 재배가 되는 장소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경사지이며 게다가 땅도 그다지 비옥하지 않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당도를 최대한 올리고 그 양분을 저장하기 때문에 최고의 품질을 만들어낸다. 척박한 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과일에게는 스트레스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우리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제로 살다보면 가끔은 상식이 없는 신자들을 만날때가 있는데, 그럴때는 어김없이 미움이 생기고 외면하고 싶은 생각이 생긴다. 하지만 이또한 악마의 유혹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견디면서 하느님의 위로를 청하곤한다.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끊임없는 자기 수양과 훈련은 그 임계점을 높이는데 도움된다.
물을 100도까지 끓게 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차와 커피의 맛을 최고로 우려 내는 80도의 물을 얻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오랜 경험과 온도계의 도움을 받아야만 그 지점을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미움이나 외면을 하고픈 마음이 생기더라도 멈추고 삭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카레이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인에게서 들은 말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있다. “코너를 돌 때 시속 149킬로미터로 달리면 2등, 시속 150키로미터로 달리면 1등, 시속 151킬로미터로 달리면 도로를 이탈해서 완주를 못한다.” 참 절묘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불과 1킬로미터의 속도 차이로 1등과 2등, 그리고 탈락으로 갈린다는게 어쩌면 우리네 삶의 모습과 닮았다. 누구나 1등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무리하게 속도를 내서 굽은 길에서 조차도 엑셀레이터에서 발을 떼지 않는다면 여지없이 궤도를 이탈한다. 1등을 하고 싶다면 전체 레이스를 생각해서 속도를 높일 때와 줄일 때를 정확하게 지켜야 한다.
우리의 인생에서 내 삶이 평범한 수박이 될지 달콤한 무등산 수박이 될지 가늠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비록 지금, 산비탈에 위태롭게 서있다 해도 그걸 탓하거나 원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어려운 환경이지만 어떻게 적응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 그 비탈에서 더 강해지고 삶도 충실할 수 있기를 고민하는 것이 현명한 삶이다. 우리 인생에서 지킬건 지키고 버릴 건 버리는 지혜와 용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자연과 우리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서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네 삶도 그렇게 묵묵히 견뎌내면서 새로운 계절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