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부부가 되세요
남존여비의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남편은 부인이 칠거지악에 해당되면 합법적으로 부인을 내쫓을 수 있었다. 시부모에게 순종치 않는 죄, 아이를 못 낳는 죄가 가장 큰 죄였다. 그리고 부정과 질투, 도벽, 불치병, 말 많은 것이 칠거지악에 속했다.
하지만 여자가 칠거지악의 죄를 지었더라도 삼불거에 해당되면 쫓아내지 못했다. 여자가 돌아갈 친정이 없거나, 처가 부모가 삼년상 중이거나, 부인이 가세를 일으켜 세우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경우에는 쫓아낼 수 없었다. 이를 어기고 기어이 부인을 쫓아내었다면 나라는 남편을 극악무도한 죄로 다스려 곤장 80대를 맞는 형벌로 다스렸다. 그래도 조선 시대에는 최소한의 양식과 양심과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있었다.
살다보면 모든 부부들이 뜻이 맞는 것은 아니다. 결혼 초에는 잘 견디다가도 살면서 점점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어느 시대에나 인격적으로 부부가 일치되지 못했을 때 법을 앞세워 문제를 회피하거나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서로에게 생길 수 있는 불화와 부정, 질투, 갈등과 증오 등은 법률적인 수단만으로 완전하게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고통스럽게 확인되는 이런 병폐들은 신앙에 따르면 남녀의 본성이나 성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온다. 이런 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부부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세례를 성사라고 하듯이 혼인도 성사이다. 하느님의 은총이 쉽게 드러나는 장이 혼인이라는 말이다. 혼인생활이 수월하지만은 않겠지만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노력하면서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 축복하시는 사랑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배우자가 자기의 이상적인 모든 조건을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완고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결과물은 축복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어느 공동체나 마찬가지 이듯이 부부도 서로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노력해야 한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평범한 일이라도 그 안에 마음씀씀이가 없다면 제도가 몸을 갈라놓지 않았을 뿐 이미 갈라져 있는 상태와 마찬가지이다.
부부는 하느님께서 맺어주셨으니까 두 사람 사이에는 하느님이 살아계셔야 한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느님은 선하신 분, 자비하신 분, 용서하시는 분이다. 부부 사이에 하느님이 살아 계시면 두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선함, 자비로움, 용서일 것이다. 올 한해는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 서로 좋은 것만을 기억하고, 상대방의 좋은 점만을 보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가면서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