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의미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는다는 이 사실 앞에는 그 누구도 승복하지 않을 수 없다. 보브와르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제목의 작품을 남겼고, 체홉은 “인간은 태어나서 고뇌하다가 마침내 죽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말하자면 삶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죽음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행보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제2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형태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탄생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죽음 또한 새로운 삶에로 이어진다고 믿어야 한다. 새로운 삶은 제2의 삶이다. 이 제2의 삶은 영원한 삶이 된다. 하느님 나라의 삶, 하느님 세계에서의 삶을 뜻한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 중에 다음과 같은 인간의 삶을 설명을 한 것이 기억된다. “인간이 이 땅에 온 것은 휴가이다. 말하자면 이 지상에 태어나서 산다는 것은 지구로 휴가를 온 것이다. 그러나 이 휴가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한시적인 휴가인 것이다. 때가 되면 휴가를 끝내고 돌아가야 한다.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는 재론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천상병 시인도 ‘소풍’에서 우리는 잠시 이 지상에 소풍을 왔고 언젠가는 하늘나라 집으로 돌아간다고 표현을 했다. 그렇다. 삶이란 이름의 휴가와 소풍이 끝나면 우리는 죽음에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죽음이 곧 제2의 삶에로 이어짐을 의미하기에 죽음 자체를 너무 불안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천국의 좁은 문이다.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갈 사람은 우리들 중에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던가. 그것은 이 땅에 휴가나 소풍을 확실한 자세로 충실하게 보낸 자만이 입문하게 될 것이다.
소금이 되라. 이웃을 사랑하라. 너희를 지켜주는 거룩한 분이 계심을 잊지 말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았느냐에 따라 자격이 부여될 것이다. 우리들의 가장 큰 영원의 비극은 살아서가 아니라 죽음 이후에 있다. 그것은 이 땅에서 함께 살아온 얼굴들이 영원히 헤어지게 되는데 있다. 이 세상에서의 휴가와 소풍을 충실하게 보냈느냐에 따라 함께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는 영원한 이별의 기로에 서기 때문이다. 제2의 삶은 이처럼 가혹한 심판이 이뤄진다.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는 영원한 삶을 위해 아버지의 말씀을 충실히 살아가는 삶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며 스스로를 위한 길이 될 것이다.
주님! 휴가와 소풍을 끝내고 돌아갈 때 우리 모두를 후하게 대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