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아는 게 병이다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2-12-09 16:43 조회수 : 19



‘식자우환’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아는 게 병’이라는 뜻이지만, 때로는 올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남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걱정거리가 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몇 년 전에 비교적 한산한 서울 지하철을 탔을 때 일어난 일이다. 붉은 성경책을 들고 들어온 한 중년 남자가 큰 소리로 자신을 모 교회의 목사라고 소개하며 “성경책을 읽지 않고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빨리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외쳤다. 사람들이 시끄러워서 수군거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 당당하게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사회가 시끄럽고 자연재해가 나는 것은 주님을 믿지 않아서 내린 벌’이라고 떠들어 댔다. 난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으로써(*^^)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열정을 갖고 누가 뭐라하든 상관없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그 목사가 부럽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나 같으면 솔직히 못했을 것 같다.  


그런데 때마침 바로 앞에 엄마 품에 안겨 새록새록 잠을 자고 있던 한 아기가 깨어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이가 깬 것은 그 목사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나이가 지극히 드신 노인 한 분이 목사보고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자 그 목사는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라면서 저주의 말을 남기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 붉은 성경책의 주인공인 목사는 아마도 그날 밤 ‘자신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음을 선포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대견해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평가를 해보아도 그 목사의 행동은 분명히 틀린 것이다. 그 목사의 행위는 복음선포도 아니고 증거의 삶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유는 그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 아기와 전철에 있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이 목사가 바로 ‘식자우환’에 해당되는 사람이 아닐까? 그 목사는 그릇된 신념 때문에 이웃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기는 커녕 오히려 하느님 뜻에 위배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나 또한 지하철의 목사처럼 제 딴에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거역해 버린 사람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는 것이 병이 되지 않고 힘이 되려면 제대로 알고 아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아는 것을 잘 실천하는 진짜배기 신자들은 신앙에서 힘과 활력소를 얻지만, 실천하지 않는 무늬만 신자들은 신앙에서 기쁨과 힘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신앙생활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 이제 우리는 알기위해서 노력해야 할뿐만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살아가는 참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