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의 의미와 가르침
사람과 동물은 겉으로 하는 행동은 상당히 비슷하지만 차이도 상당히 존재한다. 먹는 일에 있어서 그 차이는 분명한데, 동물은 단순히 육체의 활동에 필요한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서 먹는다. 그래서 먹는 모습을 보면 다른 동물이나 동료들에게 빼앗기 않으려고 씹기보다는 무조건 속으로 우겨넣는다.
그런데 사람의 식사는 동물처럼 살기 위해서 열량을 보충하는 의미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가 하나 더 붙는다.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 식사를 한다. 가족이나 동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음식뿐만 아니라 거기 참석한 모든 이들과의 정신적인 교류, 사랑의 흐름도 같이 먹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식사를 함께 함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번째 의미를 제거해 버린 식사는 이미 인간의 식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과는 달리 사람은 마음의 교류가 차단된 채 식사를 하면 체하기도 한다. 입으로 음식을 먹는 동안 귀로는 정신의 음식, 예를 들어 따뜻한 말이나 격려, 위로의 말이 들어가야만 식사는 인간적인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런 본래적인 식사의 모습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광경이고, 나아가 소원해졌거나 어긋났던 사람들이 식사를 통해서 다시 이어져 화해와 평화가 회복되는 것이다. 일찍이 이런 이치를 깨달은 동양의 선현들은 사람들이 함께 곡물(禾) 즉 음식을 입(口)으로 먹는 일에서 평화(和)의 근본을 찾았던 것이다. 지금도 한 때 마음이 상한 사람들이 다시 화해할 때에는 한잔 하거나 식사를 같이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성서 안에서 식사를 통한 평화와 화해야말로 구원을 나타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표현에 속한다. 그렇기에 하느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도 식사가 의미하는 바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는 구원의 역사 전체가 어떤 의미로는 식사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식사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진행되다가 결국 그 이야기로 끝마쳐진다고 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여러번의 식사와 최후의 만찬을 통해서 죽음과 부활의 의미와 하느님 나라를 가르쳐주셨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첫 만남도 식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모든 신앙인들의 선조인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면인 창세기 18장에서 나그네로 변신한 하느님을 알아보고 대뜸 부인 사라에게 빵을 구우라고 하고 종에게는 가장 좋은 송아지를 잡아서 요리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그리고는 자신은 손님들로 변신한 하느님이 나무 밑에서 식사하는 동안 그 곁에 서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이렇게 하느님과 인간의 최초의 만남이 식탁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럼 우리 가정 안에서 식사의 모습은 어떤지를 되돌아보자. 혹시 동물들처럼 일체의 대화나 공감대 형성없이 그저 열량을 채우는데 급급해 하지는 않으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