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영혼의 동반자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2-12-20 16:34 조회수 : 6

산 속에 살 때에 나는 새들과 나름대로 교감을 갖고 살았다. 죽기 일보직전인 새들을 살려주면서 내 목소리를 들려주거나 특정한 소리를 내면 새들이 내 목소리와 소리를 기억했다가 소리를 내면 주변을 맴돈다. 그럴 때 모이를 지속적으로 주면 어느새 새들이 긴장을 풀고 모이를 먹는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내 손에 까지 올라와주는 기쁨을 주기도 한다. 새들에게 들려주는 몇 개의 특정한 소리에 따라서 달려오는 새의 종류도 달랐다. 먹이를 주면서 반복적으로 소리를 내면 새들도 그 소리를 알아듣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많은 소리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리를 나와 상관이 없기에 흘려보낸다. 소리를 듣다보면 꼭 필요한 소리도 있고, 그냥 흘러가 버리는 소리,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하는 소리도 있다. 신학교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을 당시를 기억해보면 문여닫는 소리나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누구인지를 대충 알아맞힐 수 있었다. 그만큼 함께 생활을 통해서 상대방의 성격이나 습관이 나도 모르게 인지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 말을 듣고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내가 매일 많은 말을 하지만 상대방이 내 마음까지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또한 반대로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니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말이 말로 전달되지 못하고 거리에서 나는 잡다한 소리처럼 허공을 떠돌다 사라지면 그처럼 공허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신앙 안으로 적용해 보았다. 신앙 안에서 키워가야 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알리는 것보다 다른 이의 소리를 잘 듣는 능력이어야 한다. 특별히 하느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을 읽을 때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면 요한이 아무리 외쳐도 알아들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말이 제대로 통하는 사람을 ‘영혼의 동반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삶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살아온 부부라도 서로 불통하고 상대방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가 아닌가?


이제 예수님이 오시는 성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예수님을 잘 맞아들이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올 한해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주는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함께 사는 남편이나 자녀들이 성당에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이 있는데, 내가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준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이 먼저 앞장을 서서 주님을 찾을 것이다. 바로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제대로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상큼한 상상을 해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