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이념과 신앙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1-02 10:03 조회수 : 17

종교의 책무 중 하나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을 시기는 독재정치로 사회는 불안했고 사람들이 영적으로 의지할 곳이 없었을 때 였다. 공안통치하에서 국민이 신음하고 있을 때 정의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어온 것이 교회였다. 그 당시에 교회는 양심에 흠을 남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와 정의로운 것이 아니면 받아 드리지 않겠다는 정신적 의지가 강렬했었다. 


그랬던 교회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비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본다. 우리들은 많은 경우에 내부에서 문제점을 찾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외부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래서 내 탓이라기 보다는 네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작금의 현실에서는 가장 우선적인 핑계로 코로나를 대고 있다. 물론 코로나의 영향이 절대적인 것은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우리들은 책임이 전혀 없을까? 코로나가 무서웠지만 신앙인들에게는 신해박해(1791년),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1년), 병오박해(1846년), 병인박해(1866년)보다 더 두려웠을까?

코로나가 진정이 되고 모든 삶이 거의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온 이 시점에서도 교회가 계속 비어 있는 것은 왜일까? 무엇 때문에 코로나로 떠난 사람들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인가? 우리들은 사람들이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과연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러시아의 대표적인 인권운동가이며 작가인 포드라비네크는 구 소련 시절, 소련의 인권문제를 부정적인 면에서 폭로한 죄로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10여년이란 세월을 참혹한 시간 속에서 보내야만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끊임없는 회유와 타협의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그의 지성과 신념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진실 앞에서는 견디어야 한다는 결론이 확고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혹한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낸 포드라비네크는 자유를 찾던 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의 긴 수용소 생활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결코 손해 본 헛된 시간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곳에서 너무도 값진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감명을 값으로 친다면 고통의 연속이었던 수용소 생활과 맞바꿔도 후회가 있을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내가 수용됐던 그곳에는 열 한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서를 몰래 출판하다가 검거되어 사상범으로 수용되었다. 정부는 그들에게 신앙을 버린다고 공표만 한다면 석방하여 자유의 몸이 되도록 허용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거부했다. 결국 정부는 그들을 단 한 명도 굴복시킬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 모두의 정신력과 신앙심에 감명을 받았다.” 타협을 거부한 그 힘은 단순히 인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것으로 신앙의 진실한 힘이란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