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비뚤비뚤한 발자국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2-12-23 11:04 조회수 : 14

올 겨울에는 눈이 자주 내리고 있다. 눈은 낭만적이고 보고 있으면 세상을 온통 순백색을 덮어주어서 때로는 무척이나 고맙기도 하다. 하얗게 눈 덮인 길을 걷는 것은 설레면서도 때로는 두렵다. 첫발자국이라는 의미가 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첫발자국을 남긴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 길이 나의 흔적이라고 생각하면 살짝 두려움으로 쉽게 발자국을 딛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한 여인이 눈 덮인 언덕길을 향해 걸어간다. 여인의 가슴엔 원한과 증오가 가득 차 있다. 여인은 자신이 버려진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덕에 올라 무심코 자신이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보면서 여인은 생각을 바꿨다. 목표를 향해 똑바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눈 위에 찍힌 자신의 발자국은 이리저리 비뚤어져 있었다. 여기서 여인은 불완전한 인생과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비로소 어머니를 용서하게 되었다.


<빙점>이라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우리가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선 잊고 타인만 정죄하면서 그 많은 시간들을 증오로 허비하고 있지 않은가?


눈 위에 난 발자국은 이런 모습이 얼마나 덧없는지 나에게 소리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나와 당신은 용서를 받기보다는 용서를 하는 사람이 되길 기원해본다. 용서를 한다는 것은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가슴 속에서 용서 못했던 그 사람을 성탄을 목전에 둔 오늘 아침에는 그만 용서를 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