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식별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표지로 할례를 행한다. 자신들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육체의 한 부분을 보면서 각성한다. 그런데 모세는 하느님 백성에 속한다는 표지로 받는 진정한 할례는 마음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라고 하면서 ‘다시는 하느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지 말아라’ ‘머물 곳이 없어서 정처없이 떠도는 사람까지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그 뜻을 풀이해 주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라는 표징을 받는다. 세례를 통해서 인호를 받는 우리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처럼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느님 말씀과 가르침에 등 돌리고 눈앞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고집스러움으로 하느님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살게했다. 하느님 말씀을 따른다고 하면서 이웃의 아픈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겉치레 신앙행위로 인해 우리가 가져야할 부드러운 마음은 변해서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이게 된 것이다.
요즘 교회 안에서 유행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영적 식별’이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기도를 통해서 알아보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다.”(1코린 1,25)는 말씀처럼 우리 자신의 판단과 힘에 너무 의지하지 않으려는 경계심만 있다면, 주님의 음성을 듣는 데에 그만큼 익숙해질 수 있다.
말로는 영적식별을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묻는 일보다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선한 일과 하느님의 뜻을 혼동하기 일쑤인 우리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나의 생각과 말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 결정적인 것이라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을 세속적인 신념으로 가득 채워 실제로 주님 말씀을 뒷전으로 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삶에 정말로 이웃이 중요한 사람인지, 세속적인 일이 너무 바빠서 하느님을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을 섬기는 예절은 잘 하려고 마음을 쓰면서도 기도에는 그만큼 마음과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에 더 관심을 갖고 영혼의 식별에 노력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