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아 물러가라
매년 사순 시기 첫 주일에 교회는 예수님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신 내용을 복음 말씀으로 들려준다. 예수님은 40일이나 굶어 배고파 죽을 지경에 이르렀어도 빵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온 세상의 부귀와 권세를 다 줄 테니 불의에 타협하라는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으셨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죄로 유인하는 유혹을 물리친다면 죄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합리화하는데 그 과정이 그럴듯하다. ‘이번 한 번 뿐인데,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으면 되지.’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위안한다. 그런 것이 쌓이다보면 불충한 신앙인들이 되는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다. 처음에는 아주 자그마한 것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오류를 범하게 되는데 그동안 작은 잘못에 대해 둔감한 이유로 큰 잘못도 별로 양심에 꺼리지 않게 된다. 흉악범이 처음부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많지 않다. 처음에는 양심에 꺼리는 것을 하나하나 양보하다가 마침내 양심 전체를 팽개치는 중죄인인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은 흉악한 범죄자도 살인강도도 소도둑도 그리고 냉담 교우는 아니다. 아직은 의인이고 선한 사람에 속한다. 그러나 양심을 하나하나 양보하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조금씩 양보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냉담 교우로, 하느님과 멀어진 사람으로,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의 유혹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죄인으로 타락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악마는 처음부터 큰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유혹하지도 않는다. 만약 큰 죄를 지으라고 유혹하면 우리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간교한 악마는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부터 유혹한다. 죄인지 아닌지 아주 애매한 것부터 유혹해서 야금야금 조금씩 양심을 갉아먹다가 나중에는 정의를 양보하라고 유혹할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작은 것부터 절대로 악에서 양보해서 안 된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양보하는 것은 바로 죄를 짓는 첫걸음일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유혹을 이기신 예수님처럼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사탄아, 물러가라.”(마태 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