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진정한 선교와 신앙인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1-04 09:07 조회수 : 27

유럽이 아시아와 접촉을 가진 것은 16세기 말이다. 유럽의 상선들이 무역을 위해 인도, 중국, 일본 등지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갖고 있던 천문과 항해 기술을 비롯해서 무기, 기계 등 유럽의 물질과 과학 문명은 당시의 아시아 국가들 보다 우월했다. 


유럽의 선교사들도 이 상선을 타고 아시아로 들어왔다. 그런데 이들은 당시 유럽인들의 기술 문명이 우월하였기에 상대적으로 갖고 있던 우월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동양에 왔던 선교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써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품위와 행동을 갖추지 못했다. 그들도 다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고 우월감에 젖은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선교는 구원받지 못하는 불쌍한 아시아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월감을 갖고 아시아인의 운명인 지옥의 영원한 불에서 구해 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교회 밖에 구원은 없다’는 가르침에 따라 지옥에 갈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는 것이 선교사라는 확신을 갖었다. 따라서 복음 선포에는 우월감과 권위주의가 스며들어 있었다. 이런 우월감과 권위주의의 잔재를 우리는 거리에서 ‘예수 구원, 불신 지옥’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독선적인 자세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 신앙은 우월감, 권위주의, 패권주의가 결코 아니다. 사람이 죽어서 구원을 받고 못 받고는 하느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그리스도 신앙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가치관에 따라 사는 구원의 길이다. 다른 종교들은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언어로 발생한 구원의 길이다. 

예수님은 유다교 안에만 구원이 있다는 당시 유다 종교 지도자들의 독선을 거슬러 말씀하신 분이었다. 예수님은 죄가 많았던 세리 마태오와 자캐오를 통해서 어떤 사람도 버리지 않는 하느님임을 가르쳤다. 오히려 예수님은 유다 종교 지도자들이 하느님이 버렸다고 외면하는 죄인들과도 즐겨 어울려서 식사도 하셨다. 그들과도 하느님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 준 것이다.


우리가 아직 하느님을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이웃을 신앙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그들의 영혼이 염려스러워서가 아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알게 된 하느님은 자비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 사실을 널리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배우고 실천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만 생각하는 좁은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실천한 하느님의 일들 안에서 인간의 참된 자유와 삶의 풍요로움을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신앙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