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말과 행동의 힘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1-27 10:07 조회수 : 43

서울 혜화동에 있는 신학교에 많은 사람들이 운동장이며 나무 그늘 밑에서 앉아서 한 노파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치 이천 년 전에 갈릴래아 호수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던 군중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사람들은 한 노파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을 온 정신을 기울여 듣고 있었다. 마치 갈증으로 꺼져가는 생명 앞에 한 바가지의 물처럼, 그 귀한 물을 한 방울이라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하듯이, 숨을 죽이면서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파의 말 한마디는 청중들의 가슴에 감동을 일으키며 그것이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생명수처럼 스며들었다.

 

무엇이 이 놀라운 일을 가능케 하였을까? 여기에는 한 가지 대답 밖에 없다. 대중을 상대로 말하고 있는 사람이 ‘버림받은 이들의 어머니’로 알려진 마더 데레사 바로 그분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상 어떤 설명을 추가할 필요가 없었다. 그분의 말솜씨가 유별난 것도 아니고, 또 그의 말의 내용이 대단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내용을 대충 요약해 보면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형제들입니다’ ‘빵 없는 굶주림보다 사랑의 굶주림을, 옷 없는 헐벗음보다 인간의 존엄성이 벗겨진 헐벗음을 기억합시다’ 하는 정도였다. 신앙인이라면 교회 안에서 흔히 들어온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말을 마치 처음 대하는 것처럼 깊은 감동을 느끼며 듣고 있었다. 


왜 그럴가? 무엇이 똑같은 말인데도 단순히 그분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로 만으로도 그토록 엄청난 무게를 지닐 수 있게 하였을까? 

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 명료하다.  그분이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그 말을, 마치 빵 굽는 사람이 밀가루에 누룩을 넣고 반죽하듯이, 자신의 삶에 사랑의 실천을 넣고 평생을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을 무척 싫어했던 니체가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 신자들이 성서가 전해준다는 그 기쁜 소식을 얼굴과 행동에 드러나도록 살았더라면, 그 책의 권위를 믿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들이 그토록 애쓸 필요가 없었을것이다”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이 노파의 눈빛, 표정, 노동으로인한 투박한 손, 하고 있는 차림새 전체에서 성서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래서 긴 설명이 따로 없이도 복음은 틀림없이 기쁜 소식이며, 사랑이신 하느님을 이 각박한 세상에도 여전히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쉽게 수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 ‘마더 데레사’의 말과 표정 일체에서는 ‘증거’로서의 힘이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