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다양성이 우리를 살린다
코로나로 인한 팬더믹은 인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서로가 불신하는 문화를 만연시켰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는 주변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차단할 준비와 의지를 과감하게 표현하는 것을 합리화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팬더믹의 원인을 찾아서 다음에는 그런 불행이 오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생태계의 정점은 인간이 차지하고 있지만 자연 안에 살고 있는 생물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인간의 삶도 보장된다. 다양한 생물종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야 웬만한 외부충격에도 끄떡 않고 생태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물종 다양성이 빈약한 상태에서 그중에 하나가 전염병에 걸려 전멸하기라도 하면 그 생물종을 고리로 하는 먹이사슬이 끊어져 결국 생태계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 개체 생물의 처지에서 보더라도 변화하는 외부환경에 따라 살기 위해서 끝임없이 변종을 만들어낸다. 박테리아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인간은 이들을 박멸하려고 수없이 많은 약품을 만들었지만 박테리아는 그보다 더 많은 변종을 만들어냄으로써 오늘날까지 꿋꿋하게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박테리아의 변신을 가장 잘 흉내 내고 있는 부류가 현대의 첨단 전자 산업이다. 이들은 하루가 멀다고 신제품을 내놓고 변덕스러운 소비자의 관심을 자극해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양성과 관련하여 하나의 딜레마를 보게 된다. 과거와 비교하여 인간 사회는 훨씬 다양해졌는데 왜 생태계는 자연이고 사회고 간에 더욱더 불안정해지고 있을까?
그것은 이기적 욕망에 근거한 물질주의적 경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오로지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자연계의 생물다양성을 무참하게 파괴했다.
우리가 대형 슈퍼마켓에서 보는 엄청난 상품의 다양성은 다른 곳의 다양성을 파괴한 끝에 얻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진열대에 산처럼 쌓여 있는 바나나와 커피는 생물종 다양성의 보고인 열대우림을 불도저로 밀어내고 세워진 거대한 농장에서 생산된 것이다. 열대우림이 지구 면적의 7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지구 전체 생물종의 절반 이상이 살고 동물들이 숨을 쉬는 산소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다.
다양성이 사라진 생태계는 약간의 외부적 충격이나 변화에도 기존의 질서가 쉽게 무너진다. 이번 코로나 팬더믹 현상도 그 일종의 하나이다. 인간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동식물의 생존터전을 위협하고 차지하게 되자 살기위해 도시로 나온 동물들에 의해서 박테리아가 퍼졌다. 그로 인해서 인류는 커다란 댓가를 치루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인간만이 살고자하면 역설적으로 인간들은 그 반대급부로 급속히 멸절되고 말 것이라는 준엄한 경고인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공동체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여러가지 원인 중에 하나가 다양성의 부족이라는 점이다. 교회의 중산층과 노령화는 어렵고 의지할 곳이 없는 젊은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낸 결과이다. 정말로 교회가 다시 살아나려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뜻을 잘 헤아리고 다양한 모든이들을 품을 때 건전해지고 살아있는 교회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