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느티나무처럼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4-07 21:24 조회수 : 119

느티나무처럼 


본당 마당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다. 나이가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지 않은 세월동안 성당에서 일어난 일들을 지켜봤을 것이다. 그래서 이 나무만 보면 가끔씩 숙연해진다. 아름드리나무는 긴 세월 한 자리에서 많은 고초와 상처를 겪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어느 한 순간 모진 풍상을 견뎌내지 못했더라면 오늘날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견디며 참아왔기에 여름만 되면 언제나 푸른 잎이 무성해지고 시원한 그늘 아래 온갖 새와 신자들이 쉬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젊은 시절에 흑과 백이 매우 분명했다. 정의와 불의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행동했다. 그러다보니 쉽게 상처를 주고 또 나 자신도 쉽게 상처를 받기도 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선명하게, 그리고 바르게 잘 자랄 것 같지만 상처받기 쉽고 꺾여 버리기 십상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내면은 늘 창백하고 허전하다. 생각과 행동이 유연하지 못하고 폐쇄적이다 보니 더 큰 사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나무에 비유하자면, 그런 사람은 큰 나무로 자라기 어렵다. 잘 생기고 능력 있고 건강하고 똑똑한 사람만이 큰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처받지 않고 비바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일체의 고난 없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나무가 큰 나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연 본래의 모습은 그런게 아니다. 성당 마당의 나무처럼 길고 긴 풍상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온갖 것들이 다 들어와 더불어 쉴 수 있는 나무가 되는 것이다. 


많은 생명을 품고 쉴 곳을 제공할 수 있는 넉넉한 큰 나무 같은 사람에게는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없다. 경쟁의식도 없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서 나쁘니, 옳으니 그르니 하는 판단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것, 존재하는 것, 모두가 아름답고 선하다고 생각하며 매사를 받아들인다.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들, 우리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상처들, 스스로 봐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추한 모습들조차 ‘나’ 라는 큰 존재 안에 함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야 비로소 완전한 생명, 큰 생명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다. 


고난이나 상처는 키우는 자양분이다. 지워야 흔적이 아니다. 오늘의 상처를 오롯이 품고 인내한다면 내일 다시 태양이 떠올랐을 마음의 키는 훌쩍 자라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못난 사람들, 못된 사람들, 늙고 병든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없는 사회가 건강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런 무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만일 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다면 우리의 생명 또한 죽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