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아브라함 할아버지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3-22 06:44 조회수 : 104

아브라함 할아버지 


성서 안에서 신앙의 모범으로 제시하는 인물들 중에는 가끔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면 속으로 아쉬울 때가 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역사의 출발점이다. 하느님을 위해서 자기가 몸담아 살던 고향과 친척, 나아가서는 그의 외아들까지도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은 그 완벽한 순종으로 인해서 ‘모든 신앙인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은 위대한 인물이다. 


우리는 그분이 인간으로서도 완벽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당연히 기대한다. 그런데 창세기 20장에서 아브라함에게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뜻밖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아브라함이 오랜 여행 끝에 ‘그라르’에 정착해서 살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남달리 미모가 뛰어난 자기 아내 사라를 탐내는 이방인들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는데, 염려하던 일이 현실이 된다. 그곳 왕 아비멜렉이 부인 사라를 마음에 들어했다. 이때 아브라함은 사라를 자신의 누이 동생이라고 하면서 상황을 벗어나려했다. 다행스럽게 하느님이 개입을 하셔서 아내를 되찾아 주셨다. 하마터면 용기를 내지 못해서 아내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인물이 될 뻔했다. 


이 상황을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해도 보통 일은 결코 아니다. 사내로서 제 아내에게 뻗쳐오는 마수에 대항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의 본능이요, 그것을 못하면 아내를 지키지도 못했다는 불명예를 뒤집어쓰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비겁했다. 아비멜렉왕이 사라를 돌려주면서 자신을 속인 아브라함을 꾸짖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핑계마저도 서슴치 않았다. 자기가 죽는 일이 두려워 두 눈을 뻔히 뜨고 아내를 고스란해 내주었다가 면박을 당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니 아브라함의 인물 됨됨이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중요한 것은 하느님은 작은 허물을 보기보다는 뜻을 위해서 여러번 자신을 희생한 아브라함의 공을 가치있게 보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하느님과 우리들이 보는 시각과 판단의 차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 아브라함의 교훈은 자신의 판단보다는 하느님의 시각과 판단이 우선이라는 점을 깨우치면서 살아가야 진정한 신앙인임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