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나는 실패작이 아닐까?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2-16 06:38 조회수 : 72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인 인간은 삶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혹시 나는 실패자가 아닐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것이 쌓이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절망으로 빠질 수도 있다. 죽음을 향해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사람의 발걸음을 생명쪽으로 향하게 하는것이 ‘구원’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어떻게 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웅덩이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두 귀를 잡아 올려 몸을 스스로 물 밖으로 빼낼 수 없는 것처럼, 절망의 비탈길에 들어선 인간이 몸과 마음을 돌려 반대쪽으로 가는 것은 정말이지 힘들다. 그래서 구원은 위에서 즉 은총에 의해서 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공통된 가르침이다.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망 없는 처지에서 헤매고 있던 사람들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전혀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성서 안에서 특히 신앙의 영웅이라고 추앙받고 있는 인물들도 모두가 예외 없이 하느님의 자비로우신 은총이 아니었다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을 인물들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한 종교의 경전 치고 성서만큼 그 안에서 인간의 온갖 죄악과 약점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는 예도 별로 없다. 오히려 약점을 숨기기는 커녕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2코린 12,9).


신앙의 영웅들에 관해서까지 그 인간적 약점들이 조금도 에누리 없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그 무슨 노출증에 걸린 심리적 병폐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권능이 얼마나 깊숙이 인간의 약점과 죄악을 쳐 이기고 구원을 실현시켰는지를 소리 높이 외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약점이 오히려 자랑이 되고,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고 외칠 수 있는 나라, 그것이 ‘신앙의 나라’이며 ‘하느님의 나라’이다. 같은 논리로 자신에 대한 절망이 철저한 곳에 하느님께만 의지함으로써 얻는 희망이 한층 더 순수하고 확실해지는 나라, 그것이 믿음의 나라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어차피구원자이신 하느님 의지하고서만 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