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얻는 것과 잃는 것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2-28 08:40 조회수 : 60

얻는 것과 잃는 것


우리가 너무나도 가난하던 시절에는 서양의 물질문명이 영화 장면에 나타날 때면 천당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미국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 미군부대에서 처음 맛보았던 미국산 도너츠로 인한 문화적 충격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냉장고라는 것이 있어서 한여름에도 얼음을 먹을 수 있고, 각 가정에 TV가 있어서 구태여 영화관까지 갈 필요도 없이 재미있는 구경을 하며, 멋진 승용차를 타고 보기에도 시원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은 가히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경이었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 모습들이 꿈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실현될 수 있다는 말 한마디는 우리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이라면 우리는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태세가 되어 있었다. 지도자가 독재자라도 그런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우리가 그토록 염원했던 모든 물건들을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 냉장고, TV는 물론 당시에는 갖기 힘들었던 자가용과 상상하지도 못했던 핸드폰과 그 밖의 물질적인 것들을 부담감 없이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신기한 물건들이 새롭게 우리 생활 안에 들어올 때마다 그 편리함과 만족감에 환성을 올렸다. 


그런데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소유한 지금, 우리는 조금씩 꿈에서 깨어난 현실을 비판적인 눈으로 볼 수가 있게 되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TV만 해도 누가 뭐래도 부인 못할 몇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감각 기관을 피상적인 자극에만 의존하게 만들었다. 인간이 갖고 있던 고유의 정신 활동을 상대적으로 둔화시켰고,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정보만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종국적으로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해서 한 때는 바보상자라는 이름이 붙여진 적도 있었다. 지금은 이마저도 변해가서 TV 대신에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서 시청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도 비슷하다. 대부분의 가정에 한 두 대의 자동차를 갖고 있어서 자가용이라는 단어마저 어색한 것이 현실이다. 자동차가 필수가 되다보니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발생했다. 한 때는 차로 죽는 인구비율에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적이 있었다. 자동차를 소유하면서 좀 더 크고 화려한 성능을 갖은 차를 갖기를 원하고 때로는 무리해서 또 하나의 상전을 섬기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이래저래 우리는 자유와 기쁨을 줄 것 같던 것들이 묘하게도 그것들로 인해서 더 근원적인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중요한 가치관을 빼앗긴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물건들과 그것이 주는 편의를 얻기 위해 우리가 치른 대가가 얼마나 비싼 것이었는지를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