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두려움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2-25 06:45 조회수 : 73


아프리카 숲 속에 갑자기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숲 속의 평화는 깨지고 죽음과 삶을 결정짓는 숨가쁜 현장이 펼쳐졌다. 뿔이나 날카로운 이빨이 없는 동물들은 그저 열심히 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자도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사냥을 할 수밖에 없다.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뛰기 때문에 그들 중 어떤 놈이 잡혀 먹히게 되느냐 하는 것은 간발의 차이로 결정이 난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장면은 불행한 한 마리가 사냥을 당하면서 펼쳐진다. 그토록 열심히 달아나던 놈들이 갑자기 멈추어선다. 사냥당한 동료 한 마리가 사자들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겨 사자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바로 그 옆에서 다시 풀 뜯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사를 다투던 현장은 한 순간에 다시 평화로운 낙원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사자들이 방금 잡은 먹이를 다 먹고 또 배가 고파질 때까지는 그 평화가 계속 유지된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방금 전까지 아슬아슬하던 장면이 갑자기 바뀌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토록 무서운 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전혀 공포감을 느끼지 않고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가 있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동물에게는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는 의미의 두려움이나 공포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동물들에게도 그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은 살아 있는 것들로 하여금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미리 알려서 자기 생명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창조주께서 그들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에게도 그들 나름대로의 공포나 두려움은 있다. 동물들이 먹이를 먹으면서 사방을 한 번 돌아보고, 몇 발짝 가다가 또다시 주변을 살펴보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동물의 두려움은 그야말로 동물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만 정확하게 맞춰져 있다. 그래서 그들의 두려움은 이상 번져나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장의 위험을 피했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조금 전의 일이 어른거려 일을 못한다든지 시간 뒤의 사태가 미리부터 걱정되어 신경증에 걸리는 일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앞으로 얼마 동안의 안전이 확실해지는 순간 두려움도 깨끗이 걷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어떤 동물이 사자의 밥이 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태연히 앉아 식사를 한다는 일은 상상조차 없다. 이론적으로는 사자가 사냥을 해서 먹이를 얻으면 당분간 절대로 공격하지 않는 사실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불안과 공포감을 갖게 된다. 인간은 동물적 생명의 유지를 위해 필요 불가결한 두려움도 있지만 상상으로 인한 지나친 공포감이나 불안감도 갖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러한 과도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때로는 망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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