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촛대를 닦는 며느리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2-24 04:19 조회수 : 74

춘천교구에서 사목을 하고 있는 동창신부가 전해준 이야기이다.  

데레사씨는 요즈음 며느리로는 찾아보기 힘든 효성이 가득한 며느리였다. 두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가 남기고 간 놋 촛대를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이 매일 닦았다. 그것도 아무 때나 생각나면 닦는 것이 아니다. 저녁 농삿일을 다 하고 나서 가족들을 저녁을 다 챙기고 치우고 나면 닦기 시작한다. 농사일이며 집 안 일까지 하느라 피곤할 만도 한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촛대를 닦았다. 닦기 전에 반드시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묵주기도 5단을 봉헌하고 닦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는데는 그만한 사유가 있었다. 


몇 년 전 성탄절이 지난 지 얼마 안되서 일이었다.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며 성당에서 돌아온 시 어머니의 표정은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흰 보자기를 내미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리가 없었다. 보자기에 있는 물건은 낡아 보이는 촛대였다. 본당의 촛대가 낡아서 누군가로부터 기증을 받은 새로운 촛대가 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낡은 촛대를 시어머니께서 받아오신 것이었다. 촛대가 두 개 일텐데 어쩐지 하나 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된 놋으로 만든 촛대였지만 그동안 본당미사 내내 제단을 밝혔던 귀한 성물이라서 어머니는 살짝 흥분해 계셨다. 아마도 여려 사람이 원했을텐데 성당에 일찍 가서 기도하신 덕분에 받아 오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어미야, 그런데 이상하지? 신부님이 이걸 주시면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집에 올 때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잘 안나더라.” 무슨 말을 하셨는지 며느리도 궁금했는데 시어머니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촛대를 깨끗이 닦아서 현미경으로 봐도 흠 하나, 티 한 점 없도록 닦았다고 생각되면 신부님에게 가져와서 보여 달라고 말씀하셨어.” 어머니는 앞의 말은 긴장해서 놓치시고 뒷말만 기억하신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다음 날부터 시간만 되면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촛대를 열심히 닦으셨다. 정말 반짝일 만큼 닦였다고 생각됐을 때 신부님께 가져가 보였더니 신부님께서는 잠시 웃으시면서 더 닦아야 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렇게 해서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여러 번 반복했다. 본당신부는 새로운 부임지로 떠나가셨다.


시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며느리를 불러놓고 촛대를 닦는 일을 며느리가 계속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시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에 며느리는 신부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말씀의 뜻을 여쭤보았다. 신부님은 웃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촛대를 닦으면서 마음의 때도 함께 씻어내면 하늘나라를 간다고 말했었지요.” 

며느리가 오늘도 촛대를 닦는 것은 마음의 때를 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하늘나라에서 시어머니를 만날 때까지 촛대를 열심히 닦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