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신부님의 묵상글

나누기와 채우기

작성자 : 대림동성당 작성일 : 2023-05-08 05:52 조회수 : 46

 나누기와 채우기 


사제 생활중에 가장 한적한 시간을 보냈던 연천에서는 직원들과 함께 텃밭에 야채와 채소를 키웠서 먹었다. 농사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직원들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평소에는 직원들이 시간을 내어서 함께를 관리하고 아무도 없는 토요일과 주일에는 홀로 밭에 내려가서 물을 주거나 잡초를 뽑는 등 농사일을 거들었다. 상추를 비롯한 채소들은 심을 때도 간격을 유지해서 심지만 자란 후에는 자주 솎아주어야 한다. 만약 솎아주지 않으면 밑이 썩어서 결국은 먹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채소를 솎아주는 것이 시간이 제법 걸리고 특히 한낮 빛이 강할 때에는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다.


관리를 한 다음 날에는 매번 채소들도 훨씬 싱싱한 빛으로 즐거워하고 가뿐한 표정이라고 느껴졌다. 솎아 낸 상추만으로도 맛있는 점심을 먹고 또 찾아오는 손님들이나 직원들에게 한 보따리씩 안겨주었다. 돈으로 치면 얼마 안되는 것이지만 모두 좋아했다. 그런데 상추는 며칠만에 다시 풍성하게 자란다. 학생들과 직원들이 끼니 때마다 뜯어 먹어도 여전히 밭에는 한 가득 자라고 있다. 농약도 치지 않고 인공비료도 주지 않고 오직 빗줄기와 햇빛 그리고 퇴비 만으로만 잘 자란 신선한 상추는 모두에게 기쁨을 주었다. 


만약 밭작물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끌어안고 있으면 썩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 나눠 주면 나도 즐겁고 그들에게도 기쁨이 되는 것이 어찌 야채들뿐이겠는가. 우리 안에는 내가 끌어안고 있어서 조금씩 낡아가고 부패해 가는 것이 의외로 많다. 지식도 그렇고 재능도 그렇고 재물이 그렇다. 아낌없이 나눠 주면 어느새 다시 본래 그대로 채워져 있는 것은 상추만이 아니다. 재물도 똑같다고 확신한다. 그게 본래 내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지갑, 내 통장, 내 곳간을 내가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채워 주시고 계신다는 것을 깨우치고 믿어야 한다. 

그러고보니 남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내놓는 일은 자랑할 일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눠 쓰라고 늘 다시 채워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 뜻임을 깨달아야 좀 더 성숙한 신앙인이며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